
[더발리볼 = 케손 시티 김희수 기자] 국내 최고의 세터조차 벽을 느낄 정도로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한국 시간 14일 필리핀 케손 시티 스마트 아라네타 콜리세움에서 치러진 2025 국제배구연맹(FIVB) 남자 세계선수권 C조 예선 1차전에서 프랑스에 0-3(12-25, 18-25, 16-25)으로 패했다. 프랑스의 무시무시한 체급을 느낀 경기였다. 주전 멤버가 총출동한 프랑스에 전 방위로 짓눌리며 힘든 경기를 치렀다.
캡틴이자 팀의 야전사령관인 황택의 역시 어려운 하루를 보냈다. 프랑스의 강서브 세례에 리시브가 흔들리자 발이 바빠졌고, 첫 경기의 긴장감도 온전히 떨쳐내지 못하며 아쉬운 경기를 치러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더발리볼>과 만난 황택의는 “경기를 준비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면 어느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면서 노력해봤는데, 경기를 치러 보니 역시 프랑스는 엄청난 팀이었다”며 아쉬움을 삼켰다.
황택의에게 코트에서 직접 마주한 프랑스가 주는 압박감은 어땠는지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황택의는 “워낙 개인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다 뭉쳐 있다 보니, 반대편에서 보면서 ‘어, 저건 실수다’라고 느끼는 플레이도 결국은 유효한 플레이로 연결돼 버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배구와는 많이 다른 배구를 훌륭하게 구현해내는 팀이라고 느꼈다”며 프랑스의 틀을 벗어나는 배구를 언급했다.

황택의는 설명을 조금 더 이어갔다. 그는 “또 선수들 간의 신뢰와 자신감도 엄청나다. 예를 들면 수비수들은 블로커가 코스를 다 틀어막을 거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에 굉장히 과감하게 수비 위치를 잡는다. 반대로 우리는 피지컬 차이가 나다 보니 막을 때도, 때릴 때도 100% 확신을 갖고 플레이하기가 어려웠다”며 신뢰와 자신감의 차이도 경기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같은 포지션 맞상대이자 세계 최고의 세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앙투안 브리자드를 상대한 소감은 어땠을까. 황택의는 브리자드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말 안 되던데요?”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영상으로 많이 봤던 선수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서브는 코트 위에서 받아보니까 체감이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볼을 올릴 때도 볼에 힘이 넘쳐흐르는 게 다 느껴진다”며 브리자드를 극찬했다.

인터뷰 내내 황택의에게서는 마치 이 경기로 인해 큰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도 들었다. 황택의 역시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벽에 부딪혔다고 좌절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삼고자 했다. 황택의는 “지난해부터 세계선수권 무대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고 계속 전진해왔다. 그래서 드디어 이 무대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설렜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치르고 나서 우리가 아직 배울 점이 많고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이 대회가 마냥 설레기만 하는 무대가 아닌, 우리가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는 발판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의젓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끝으로 황택의는 다음 상대인 아르헨티나전에 임하는 각오도 전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도 프랑스 못지않게 강한 팀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100%의 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그저 미친 듯이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가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뿜어내다 보면 우리는 그 동안 할 수 없었던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노력하는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행운도 따라줄지 모른다. 운이 한 번 따라줘서는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운이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 두 번, 세 번 찾아오다 보면 결국 우리의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결의를 다졌다.
벽에 부딪힌 캡틴 황택의는 주저앉거나 뒤로 돌아가기보다는 그 벽에 계속 부딪히고 넘어서려고 기를 쓰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V-리그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터다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팬들 또한 좌절하지 않고 그와 대표팀을 계속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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