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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어도 괜찮다, 가장 간절한 순간에 날아올랐으니…806일 만의 10점, No.10 고의정의 다시 시작된 날갯짓

화성=김희수 기자 / 기사승인 : 2026-01-12 06:32:57
고의정./KOVO

[더발리볼 = 화성 김희수 기자] 조금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었다.

181cm의 신장에 강력한 서브와 공격으로 유망주 때부터 주목받던 고의정은 어느덧 V-리그에서 8년차 시즌을 맞이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는 베테랑으로도 불릴 수 있는 연차가 됐지만, 사실 최근 몇 년간 고의정의 V-리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1-2022시즌 KGC인삼공사(현 정관장) 소속으로 32경기-102세트에 나섰던 고의정은 이후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잃어갔다. 2022-2023시즌에는 30경기-71세트에 나섰고, 이후 한국도로공사로 트레이드된 뒤 첫 시즌이었던 2023-2024시즌에는 20경기-36세트 출전에 그쳤다. 

IBK기업은행으로 또다시 트레이드된 2024-2025시즌에는 19경기-27세트로 출전 기회가 더 줄었고, 급기야 진에어 2025~2026 V-리그에서는 단 한 세트도 출전하지 못하면서 점점 팬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는 선수가 됐다.

그랬던 고의정이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11일 화성 종합경기타운 체육관에서 치러진 IBK기업은행과 현대건설의 4라운드 맞대결에서 이번 시즌 처음으로 코트를 밟은 고의정은 52.94%의 공격 성공률로 블로킹 1개 포함 10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다. 1-2세트를 먼저 내준 IBK기업은행이 대역전승을 거두는 데 앞장선 게임 체인저였다.

고의정의 공격./KOVO

경기 후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가 잠시 북받친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고의정을 인터뷰실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고의정은 “이번 시즌 현대건설을 상대로 거둔 첫 승이다. 비록 5세트까지 갔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승리 소감을 먼저 전했다.

이날 고의정은 선발 아웃사이드 히터는 아니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알리사 킨켈라(등록명 킨켈라)의 자리에 들어가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4-5세트에는 선발로 나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첫 출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플레이를 펼쳤다. 심지어 그간 약점으로 지적된 리시브와 수비까지도 뛰어났다. 리시브 효율 38.89%-디그 성공률 88.89%를 기록했다. 

고의정은 “원래부터 내가 들어가는 상황은 팀이 좋은 상황보다는 안 좋은 상황일 가능성이 높았다. 밖에 있으면서 들어가면 분위기 전환을 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부족한 부분인 수비나 리시브에서도 완전한 실수만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들어갔다”고 투입되던 때를 돌아봤다.

수준급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고의정은 들뜨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나에 대한 분석을 잘 안 하고 있었던 탓에 공격이 잘 통한 것 같다. 또 4세트부터는 우리 팀의 변칙 로테이션이 정석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빅토리아 댄착(등록명 빅토리아)이 아포짓으로 돌아갔는데 나로서는 더 잘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간 느낌이라서 큰 어려움도 없고 편했다”며 겸손한 목소리를 냈다.

빅토리아와 고의정./KOVO

모든 것이 걸린 5세트에도 고의정의 한 방이 팀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5-2에서 때리기 어려워 보였던 하이 볼을 과감하게 때렸고 이게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점수 차가 4점 차까지 벌어졌다. 고의정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자신 있게 때려봤다. 잘 들어가고 나서는 다행이다 싶었다(웃음). 그때부터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것 같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고의정이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준비된 선수였기 때문이다. 웜업존에 있는 선수가 코트를 밟는 상황은 종종 나오지만, 그 상황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시즌 첫 출전이었던 고의정에게는 당연히 더 어려움이 컸을 터. 

그러나 고의정은 그간의 노력과 준비를 통해 그 기회를 살렸다. 여오현 감독대행은 “고의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시즌 초반에는 무릎 쪽에 힘이 잘 안 붙었는데, 최근 훈련을 지켜보니 열심히 잘 해내고 있었다. 킨켈라가 안 될 때 투입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들어가서 실제로 잘해줬다”고 고의정을 칭찬했다. 이에 고의정은 “감독대행님께서 기회가 올 테니까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해주신 덕분에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이 경기 전 고의정의 마지막 두 자릿수 득점 경기는 무려 202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2023년 10월 28일 KGC인삼공사 소속으로 IBK기업은행을 상대했을 때 딱 10점을 올렸던 고의정이다. 무려 806일이 지나, IBK기업은행의 일원이 된 고의정은 등번호 10번을 새긴 채 다시 한 번 10점을 터뜨렸다.

눈물을 보인 고의정을 달래주는 동료들./KOVO

“등번호도 10번인데(웃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낸 것 같다”며 미소를 지은 고의정은 “사실 그동안도 기회는 많이 있었는데 내가 그 기회를 잘 못 살렸다. 이번 시즌에는 정말 후회 없이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재기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리그는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조금은 늦은 시점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시작이 늦다고 언제나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고의정의 날갯짓은 비록 조금 늦었지만, 팀이 가장 그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순간에 시작됐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이제 고의정은 날지 못했던 지난 날들은 놓아주고, 이번 시즌 IBK기업은행의 남은 열일곱 경기와 어쩌면 그 이후에 치러질지 모르는 더 많은 경기들에서도 이날처럼 팀이 필요로 할 때 날아오를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저작권자ⓒ 더발리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화성=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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