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발리볼 = 단양 김희수 기자] 정시영의 표정이 밝았다. 단지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6일 충북 단양군 단양문화체육센터에서 치러진 2025 한국실업배구연맹 & 프로배구 퓨처스 챔프전 단양대회 여자부 예선전에서 대구시청이 한국도로공사를 3-2(25-18, 23-25, 25-22, 21-25, 18-16)로 꺾고 대회 첫 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지금까지 치러진 경기 중 최고의 명경기라 할만 했다. 양 팀의 집중력 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지며 혈투가 벌어졌고, 마지막 순간까지 더 간절하게 버틴 대구시청이 마침내 기다리던 승리의 달콤함을 맛봤다.
그 중심에 정시영이 있었다. 정시영은 블로킹 2개 포함 19점을 터뜨리며 이예솔(23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터뜨렸고, 공격 성공률은 47.22%로 양 팀 통틀어 최고를 기록했다. 리시브 효율 33.33%-디그 성공 16회까지 기록하며 수비에서도 제몫을 한 정시영이었다.
경기 종료 후 몸을 풀던 정시영은 한참을 코트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코트 위에 모든 걸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더발리볼>과의 인터뷰에 응한 정시영은 “너무 기분이 좋다. 이번 대회에서 V-리그 팀을 꼭 한 번은 이겨보고 싶었는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원했던 바를 이룰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승리 소감을 먼저 전했다.

지난해 프로 커리어를 마감한 뒤 대구시청에 합류한 정시영은 실업에서의 1년차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프로 커리어 내내 따라다닌 부상의 여파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정시영은 “팀에 합류한 직후에는 한 경기를 뛰면 다음 경기를 쉬어야만 했다.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회복이 어느 정도 된 후에도 아웃사이드 히터가 아닌 리베로로 경기에 나섰다.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결과가 아쉬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 정시영의 컨디션은 준수하다. 관리에 힘쓴 덕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꾸준히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는 정시영이다. 그는 “지난해 전국체전 이후 재활기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덕분에 지금은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해도 괜찮다”며 몸 상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의 몸 상태가 갖춰진 이번 시즌이야말로 정시영의 진정한 실업 무대에서의 첫 시즌이다. 정시영은 “아웃사이드 히터로 연습 경기를 한 번도 못 치르고 대회에 나온 거라 긴장도 됐는데, 다행히 경기를 치를수록 좋아지는 것 같다. 아직은 새로 온 친구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도 필요한데, 전국체전까지 좋은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내내, 또 인터뷰를 하는 내내 정시영의 표정은 밝았다. 단순히 경기에서 이겨서 나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실업 무대에서의 배구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정시영은 “대구시청 선수들과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잘 지내고 있다. 연습 때도, 경기에서도 분위기가 정말 좋다. 고등학교 때 함께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기도 했고, 새롭게 들어오는 선수들과 친해지고도 있다. 모든 과정이 즐겁다”며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시영은 동료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배구에 대해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돈은 프로에서 더 많이 벌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구를 더 재밌게, 하고 싶은 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실업 무대이기도 하다. 또 경기에도 더 많이 나설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여기서의 배구가 더 재밌고 행복한 배구라고도 할 수 있다. 저는 배구선수다. 선수는 결국 경기를 뛸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며 새로운 무대가 주는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번 대회는 모처럼 프로 팀들과 실업 팀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웅을 겨루는 대회다. 그렇다보니 선수 수급을 노리는 프로 팀들이 실업 팀들의 경기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비록 프로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정시영 역시 그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정시영은 자신보다 후배들을 먼저 생각했다. 프로 복귀 제안이 온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아마 나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은 제안을 받을 것이다. 정말로 나에게 제안이 온다면 영광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보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정시영과 대구시청은 예선전 마지막 경기인 페퍼저축은행전을 준비한다. 정시영은 “만약 페퍼저축은행을 꺾을 수 있다면, 다른 팀의 결과에 따라 우리에게 준결승 진출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회 초반에 경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아쉬웠는데, 만약 기회가 온다면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끝으로 정시영은 “팬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과 함성이 정말 큰 힘이 된다. 앞으로 치러질 실업배구 경기들에는 프로 팀들이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한다”며 팬들에게 진심어린 부탁도 전했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준 무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부탁이었다.
프로 무대에서의 은퇴는 단순한 끝이 아니었다. 그 끝은 행복을 찾아 나서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정시영의 여정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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