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발리볼 = 광주 김희수 기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동력이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3년 비시즌, 최대 화제를 일으킨 선수는 단연 박정아였다. 한국도로공사에 기적의 우승을 안긴 뒤 페퍼저축은행으로의 이적을 선택하며 광주로 향했다. IBK기업은행과 한국도로공사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쥔 ‘우승 청부사’ 박정아기에 페퍼저축은행 역시 상승곡선을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팀 안팎에서 커졌다.
그러나 박정아와 페퍼저축은행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박정아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7억 7천 5백만 원이라는 연봉이 오히려 족쇄가 돼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팀 역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박정아의 3년 계약은 어느덧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다. 다가오는 2025-2026시즌이 끝나면 박정아는 다시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하지만 박정아를 다시 뛰게 하는 원동력은 FA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22일 일본 SV.리그 NEC 레드 로켓츠와의 합동훈련 현장에서 <더발리볼>과 만난 박정아는 “아직 우리 선수들끼리 호흡을 많이 맞춰본 상황은 아니다. 특히 대표팀에 다녀온 (박)사랑이랑 공격수들이 호흡을 잘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고 1~2일차 훈련에 대한 소감을 먼저 전했다.
NEC와의 두 차례 연습경기에 모두 출전한 박정아는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특히 리시브에서의 안정감이 눈에 띄었다. 박정아는 “일단 비시즌 내내 팀에 머물면서 몸을 계속 만들 수 있었던 게 컸다. 볼 운동도 평소보다 빠르게 시작한 편이라서 컨디션이 빠르게 올라온 것 같다”고 활약의 비결을 밝혔다.
박정아가 팀에서 빠르게 몸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박정아가 없는 대표팀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퇴출되고, 진주에서 치러진 대회에서도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뼈아픈 한 해를 보냈다.

박정아는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정말 잘 알고 있다. 가능한 모든 경기를 다 팔로우했다. 조금만 더 잘했다면 이길 수 있는 경기들이 많았기에 정말 아쉬웠다. (강)소휘한테 힘내라고 연락도 해줬다. 밖에서 보는 게 오히려 마음이 더 안 좋다. 안쓰러운 마음이 너무 컸다”며 악전고투한 대표팀 선수들을 바라보는 마음을 솔직히 전했다.
다시 페퍼저축은행 이야기로 돌아가, 박정아는 동료들에 대한 생각을 들려줬다. 먼저 함께 할 외국인 선수 조이 웨더링턴에 대해 박정아는 “되게 의욕적인 선수다. 매사에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긍정적이고, 볼도 최대한 많이 때리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같이 게임을 뛰면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며 긍정적인 코멘트를 남겼다. 비시즌 내내 함께 한 세터 박수빈에 대해서도 “에너지가 있고 주도적으로 풀어가 보려는 욕심도 있는 선수다. 호흡이 잘 안 맞을 때도 ‘언니 하나 더 때려주세요!’ 하면서 씩씩하게 다음 플레이를 할 줄 안다”며 칭찬을 건넨 박정아였다.
박정아는 대각에서 함께 할 파트너인 고예림에게는 “우선 (고)예림이가 우리 팀을 선택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먼저 전했다. 그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예림이가 많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코트 안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 중이다. 배구 외적으로도 비슷한 또래 친구가 와서 좋기도 하다”며 고예림과 함께 하게 된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이번 시즌은 박정아의 FA 시즌이다. 그러나 박정아는 “FA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히려 “FA보다도 처음 페퍼저축은행에 왔을 때 이 팀을 더 좋은 팀, 강한 팀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나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한다”며 이루지 못한 꿈이 이번 시즌의 최대 동력임을 강조했다.

다만 이제 베테랑이 된 박정아에게 FA 시즌을 맞으며 한 가지 새로운 걱정은 생겨났다. 이번 비시즌을 통해 확실해진, 베테랑 선수들을 향한 시장의 냉철한 평가다. 박정아는 “솔직히 (표)승주 언니나 (임)명옥 언니의 비시즌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다 친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이제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내년에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준비를 잘해서 좋은 시즌을 치르는 것만이 해답”이라며 실력으로 냉정한 시장을 돌파하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정아에게 과거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언제나 배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배구가 아직 재밌어서”라고 답했던 박정아에게 “여전히 배구가 재밌냐”고 질문을 던진 것. 그러자 웃음이 터진 박정아는 “솔직히 이제는 잘 되는 날엔 재밌고, 안 되는 날엔 재미가 없다”며 솔직한 대답을 꺼냈다.
그러면서도 박정아는 “그래서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력을 찾아간다. 재밌는 날을 더 많이 만들어보려고 하고, 안 되는 날에는 나름의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하는 중”이라며 새로운 길을 찾았음을 알렸다. 여기에 2년 전부터 꿨던 꿈을 이룰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동기부여까지 있는 박정아기에, 2025-2026시즌 그의 활약을 충분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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