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발리볼 = 이보미 기자] <더발리볼>이 2025년 7월, 새롭게 창간됐다. 프로 배구 소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로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도 <더발리볼>이 해야 할 일이다. 이번 호에 소개할 아마추어 팀은 화성 남양초다. 경기도에 위치한 엘리트 초등학교 남자부 3개 팀 중 한 팀이다. 그동안 수많은 배구 스타들을 배출했고, 지금도 한국 배구를 이끌 재목 그리고 배구인 2세들까지 즐비하다. 그 사령탑은 한국 여자배구 레전드 최광희 감독이다. 최광희 감독이 화성 남양초가 품고 있는 ‘배구의 꿈’에 대해 들려줬다.
‘한국 여자배구 레전드’ 최광희 감독
고향 화성서 후배들에게 ‘배구의 꿈’을 심다
최광희 감독이 남양초 지휘봉을 잡은 지 8년이 지났다. 2017년부터 남양초와 동행이 시작됐다. 한국 여자배구의 레전드라 불리는 최광희 감독은 태어난 곳인 경기도 화성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고, 그렇게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 ‘배구의 꿈’을 심고 있다.
1974년생 최광희 감독은 수원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를 거쳐 1993년 당시 실업팀 한일합섬에 입단해 5년을 보냈다. 1998년에는 KT&G(현 정관장)로 이적해 2007년까지 함께 했다.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도 3시즌을 소화했다. 프로 출범 등록으로 V-리그 무대에 올랐고,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맹활약했다. V-리그 첫 시즌이었던 2005시즌에는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MVP 영광을 안았다. 2013-2014시즌이 끝난 뒤에는 V-리그 10주년 베스트7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태극마크를 단 최광희 감독의 발자취도 화려했다.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2000 시드니올림픽, 2004 아테네올림픽까지 경험했다.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로 대회를 마치기도 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국제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다.
지난 기억을 떠올린 최광희 감독은 “올림픽에 세 번 나가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일본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예선전이었다. 그 때 러시아를 만나 3-2로 이긴 경기가 있었다. 그 때 당시 무릎이 아팠는데, 공격 과정에서 장신 러시아 선수들의 블로킹 틈 사이로 공이 다 빠지더라. 그 때 쾌감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어렵게 아테네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획득하고 돌아왔다. 갔다 와서 방송 3사 인터뷰도 했다(웃음)”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V-리그 첫 챔피언결정전 기억도 생생하다. 최광희 감독은 “그 때 한국도로공사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는데, 대부분 한국도로공사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 예상을 뒤엎고 우리가 우승을 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2007년 현역 은퇴를 결심한 뒤 인생 제 2막을 연 최광희 감독. 그 행보 또한 거침이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8년 창단된 남자배구 실업팀 화성시청 코치를 맡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의 지원 하에 전력 분석 공부에도 매진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신화 당시에도 최광희 감독이 전력 분석을 맡았다. 그는 “아무래도 고향이 화성이라 화성시청이라는 남자배구팀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 은퇴를 하고 나서 대한배구협회에서 전력 분석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서 배우고 싶었다. 그러다가 대표팀을 따라다니면서 전력 분석을 맡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광희 감독은 2010년 국제배구연맹(FIVB) 코치 코스 레벨 1 수료를 위해 사비를 들여 캄보디아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최광희 감독은 “우연히 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코치 코스 레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성시청 코치 시절이었는데 휴가 기간도 맞아서 가게 됐다. 그 시절에 캄보디아에 가서 교육을 듣고, 테스트를 보는 것까지 쉽지 않았다. 일단 강의가 영어로 진행이 됐는데, 그 옆에 영어를 캄보디아어로 통역을 해주는 분이 계셨다. 우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캄보디아인이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는 것을 듣고 그 과정을 따라야 했다”면서 “아마 욕심이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내가 언젠가 프로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최광희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 직후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그것도 잠시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 그는 “쓰러진 이후부터는 더 건강을 챙기면서 욕심을 내려놓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건강을 되찾은 뒤에도 배구 코트를 떠나지 못했다. 2016년 친정팀인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에 전력 분석관으로 들어간 것. 코치까지 맡으면서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남양초 사령탑으로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2025년 최광희 감독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대한배구협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FIVB 코치 코스 레벨 과정을 국내에서 개최했다. 작년에는 코치 코스 레벨 1만 진행됐지만, 올해는 레벨 1, 2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미 레벨 1을 수료한 최광희 감독은 올해 레벨 2까지 수료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FIVB 코치 코스 레벨이 1~3까지 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면 정식 코치 자격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초등배구연맹 경기력 향상 이사, 경기도 체육 발전을 위한 여성 체육 리더들의 정책 나눔 협의체인 ‘경기도여성스포츠리더스포럼’ 회원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소년 배구 저변 확대와 선수들의 성장 환경 개선에 힘을 쓰고 있다.

최광희 감독이 강조한 두 가지 키워드
‘인성과 끈기’
남양초는 남자 초등부 강호로 꼽히는 팀이다. 작년에는 전국소년체육대회 우승을 포함해 3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올해도 4강 이상의 성적을 꾸준히 내고 있다. 최광희 감독은 “사실 올해는 작년보다 전력이 떨어져서 예선 통과를 목표로 잡았는데 3개 대회에서 4강 안에 들었다. 소년체육대회에서도 준우승을 했다”며 힘줘 말했다.
남양초 선수들을 위한 지원도 든든하다. 최광희 감독과 이은경 코치가 팀 내에서도 연령별로 나눠 지도를 하고 있고, 선수들 몸 관리를 위해 의무 트레이너의 도움도 받고 있다. 최광희 감독은 “이 코치님이 배구를 처음 시작하는 선수들 옆에서 꾸준히 지도를 하고, 난 당장 대회에 나설 선수들 지도를 맡고 있다. 아이들이 훈련 시간에는 쉴 틈이 없다. 그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양초가 여러 대회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재다능한 유망주들도 눈에 띈다. 남양초 6학년인 주장 이재용을 비롯해 세터 김도율과 권필재 모두 아버지가 배구인이다. 176cm 미들블로커 이재용의 아버지는 고교 시절까지 전도유망한 세터로 알려졌던 이희섭 씨다. 김도율, 권필재의 아버지는 세터로 활약한 선수 출신이다. 작년 현역 은퇴를 결정한 세터 김광국, 현재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의 아들이 나란히 남양초 유니폼을 입고 있다.
최광희 감독은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전에는 여오현 아들, 이명희 아들, 이경수 아들도 여기서 봤고, 지금은 김광국 아들이 세터로 뛰고 있는데 그 기질은 타고난 것 같다. 권필재도 마찬가지다. 특히 재용이는 현재 전국 6학년 선수들 중 TOP3 안에 드는 선수다. 지금은 미들블로커로 뛰고 있지만 갈색 폭격기 신진식의 타법을 갖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할 거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경기도 내에서는 남양초를 비롯해 군포 양정초, 부천 소사초에서만 남자 초등부 엘리트 팀을 운영 중이다. 최광희 감독은 “원래 금상초까지 있었는데 4, 5년 전에 해체가 되면서 3개 팀이 됐다. 초등학교 배구부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선수 수급이다. 초등학교 팀에서는 배구에 입문하는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데 쉽지 않다. 8년 동안 여기에 있었지만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배구를 하려는 선수 수 자체가 준 것도 있지만, 배구팀이 있는 학교를 보내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멀어 고민을 하는 부모님들도 적지 않다. 결국 이사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양초는 묵묵히 전진 중이다. 남양초는 오는 10월에 열리는 추계배 전국초등학교 배구대회를 끝으로 이번 시즌을 마감한다. 최광희 감독은 “올해 선수 구성 상 신장이 좋은 편도 아니고, 기량이 월등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끈기 있는 배구로 마무리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수들에게 늘 열심히 하라는 얘기를 한다. 배구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은 본인 의지의 문제다. 그리고 인성도 강조한다. 인성이 나쁜 선수가 배구를 잘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인성이 좋은 선수는 배구를 잘할 때까지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롱런할 수 있다”며 선수들에게 기본기와 끈기, 그리고 올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한 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2의 신진식? 남양초 에이스 이재용
“프로 선수,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Q. 올해 6학년이 되면서 주장 역할까지 맡았는데 어렵진 않나요?
살짝 힘들어요.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거든요. 그래도 하나씩 잘 가르쳐주려고 해요(웃음).
Q. 배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4학년 때 정식적으로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를 하셨어요. 세터 포지션으로 뛰셨다고 들었어요. 부모님도 제가 처음에 배구한다고 했을 때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Q. 아버지가 배구 선수 아들에게 해주는 조언도 있을까요?
블로킹과 공격 스텝에 대해 얘기를 해주셨어요. 코트 안에서 소리도 많이 지르라고도 말하셨어요.
Q.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보니 현재 남양초에서는 키가 제일 크네요?
네! 지금 176cm 정도 되는데 아마 제 또래 배구 선수들 중에서도 큰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Q. 4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재밌는 순간, 그리고 가장 어려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배구 경기가 잘 안 풀리면 힘들어요. 잘 될 때는 재밌죠. 특히 공격이 잘 들어갈 때 제일 짜릿해요. (공격을 잘 하려면 결국 세터와의 호흡이 중요하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경기 도중에 세터랑 얘기도 많이 하고요. 제가 공을 올려달라고 사인을 할 때도 있어요. 또 작년과 올해 대회에서 팀이 좋은 성적을 얻어서 기분이 좋아요. 뿌듯해요!
Q. 남양초 자랑도 해주세요!
아까 말했듯이 성적도 좋고요. 최광희 감독님도 정말 좋아요! 감독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팀 성적도 좋은 것 같아요. 감독님은 늘 즐겁게, 재밌게, 파이팅 있게 뛰라고 말하셔요. 감독님!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Q. 아버지의 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이재용의 꿈은 무엇인가요?
프로배구 경기도 자주 봐요. 솔직히 아직 좋아하는 선수는 없지만, 확실히 프로 경기를 보면서 배우고 싶은 것도 생기고요. 재밌더라고요. 특히 현대캐피탈 레오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당연히 저도 프로 선수가 되는 게 꿈이고요. 나중에는 국가대표도 되고 싶어요!

글. 이보미 기자
사진. 유진형 기자
(이 기사는 배구 전문 매거진 <더발리볼>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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