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류한준 기자] 브라질 출신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올해 가장 초점을 맞춘 대회를 마쳤다. 아시아배구연맹(AVC) 주최 2026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그 무대였는데 2028 LA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3위로 대회를 마쳤다. 라미레스호는 해당 성적으로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2027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월드컵은 세계선수권대회 명칭이 바뀐 것으로 한국은 이로써 지난해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됐다.
라미레스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아시아선수권 3위 입상은 남자대표팀 국제 경쟁력이 그래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는 방증이 됐다.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라 ‘과도기’라고 볼 수 있는 여자대표팀과 달리 남자대표팀에는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는 어느 정도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이런 면에서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남자대표팀의 긍정적인 면을 확인한 무대가 됐다.
한태준 재발견
황택의 없어도 큰 문제 없었다
아시아배구연맹(AVC) 주최 2026 아시아선수권대회(이하 아시안선수권)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남자대표팀은 100% 전력을 구성하지 못했다. 주전 세터 황택의가 발목 수술을 받는 바람에 대표팀에서 소집 해제됐다. 황택의는 수술 시기를 두고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10월 말인 31일 개막하는 2026-2027시즌 V-리그에서 결장 기간을 줄이는 쪽이 됐다.
황택의 결장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는데 일본 후카오카에 있는 기타큐수에서 열린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선 그 빈자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라미레스호는 황승빈과 한태준으로 세터진을 구성했다. 라미레스 감독은 아시아선수권을 치르는 동안 한태준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
선택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최대 고비라고 볼 수 있던 8강 중국전과 호주와 3~4위전에서 한태준은 제몫을 했다. 한국은 중국전에서 1세트를 내주면서 고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2~4세트를 연달아 가져오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은 중국전 승리로 2019 테헤란(이란) 대회 이후 7년 만에 아시아선수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또한 직전 대회인 2023년 우르미아(이란)에서 한국에게 8강 탈락 아픔을 준 중국에 설욕했다. 한국은 중국전에서 특정 선수에게만 득점이 몰리지 않았다. 허수봉과 임동혁이 각각 21점을 올렸다. 좌우 상포가 제몫을 한 가운데 임성진과 이상현도 각각 11, 14점을 올렸다.
풀세트까지 치러진 호주와 3~4위전에선 경기 도중 변수도 있었다. 허수봉과 함께 한국 공격을 책임지고 있던 임동혁이 4세트 들어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코트에서 뛸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한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허수봉을 공격 1옵션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임동혁 대신 코트로 들어온 임재영과 임성진에게도 패스(토스)를 배분했다. 허수봉은 호주전에서 두 팀 합쳐 가장 많은 28점을 올렸다. 한태준은 마지막 5세트에서 허수봉에게만 공격 기회를 몰아주지 않았다. 이상현과 박창성 두 미들블로커에게 패스를 보냈다. 해당 세트 중반 미들블로커들이 시도한 속공이 모두 성공했고 상대 추격 흐름을 끊었다.
한태준은 아시아선수권을 통해 대표팀에서 백업이 아닌 주전 세터를 맡아도 손색이 없다는 걸 증명했다. 황택의에겐 한태준의 성장세가 긍정적인 자극제가 돼야한다.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그만큼 대표팀 전력 상승에 발판이 될 수 있다.
서브 중요·상대 블로킹 대비
아시아선수권서 드러난 과제
한국은 아시아선수권 조별리그 태국전과 4강 일본전에서 ‘현주소’를 제대로 느꼈다. 태국과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덜미를 잡혔는데 지난 6월 인도에서 열린 AVC컵 조별리그에 이어 2연속으로 태국에 풀세트 패배를 당했다.
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기원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한국과 맞대결에서 정말 경기를 잘 치렀다”며 “올해 들어 치른 국제대회 경기 중 가장 잘 한 경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한국에 대해선 언급을 안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지만 허수봉에 대한 목적타 서브가 주효했다. 박 감독이 한국 선수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태국 선수들은 한국 리시브 라인을 흔들어 공격 루트를 최대한 단순하게 하려고 했다.
태국이 시도한 방법은 잘 통했다. 이렇다 보니 태국은 한국과 맞대결에서 높이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블로킹 성공 숫자에서 13-4로 크게 앞섰다.
박 감독은 “허수봉 또는 임동혁 공격이 잘 통하지 않을 때 활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라미레스 감독도 이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코트 안에서 이를 풀어나가야 하는 자리가 바로 세터다. 일본전은 두 팀 기량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일본은 역시나 강했다.
아시아를 넘어 왜 세계 정상급 팀으로 평가받는지 한국을 상대로 제대로 보였다. 한국은 일본과 접전 끝에 패한 게 아니었다. 일방적인 경기 흐름이 됐다.
일본은 강력한 서브로 한국을 흔들었다. 한국 선수들이 코트 안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현대 배구에서 서브의 비중과 중요성은 여전하다. 목적타 서브와 함께 점수로 바로 연결될 가능성이 좀 더 큰 강한 서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대표팀 선수들이 서브 연습에도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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