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장충 김희수 기자]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이 가동됐다. 그 과정에서 비장의 무기도 등장했다.
GS칼텍스가 1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진에어 2025~2026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경기에서 현대건설에 2-3(24-26, 25-22, 25-20, 20-25, 15-17)으로 석패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매 세트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GS칼텍스로서는 주전 미들블로커 최유림과 오세연이 모두 부상으로 빠진 채 치른 첫 경기였음에도 승점 1점을 챙긴 것이 나름 만족스러운 경기이기도 했다. 이영택 감독 역시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짧은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잘해줬다. 경기를 보는 내내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만족스럽다. 승점 1점도 소중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이 감독은 최가은-권민지를 선발 미들블로커로 기용하면서 변칙 패턴 플레이를 예고했다. 최유림과 오세연이 모두 빠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대체자로 최가은-권민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두 선수가 가진 특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배구를 시도하기로 한 것.
그 중심에 권민지와 레이나 도코쿠(등록명 레이나)의 스위치, 그리고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의 파이프가 있었다. 특히 실바의 파이프는 그간 거의 볼 수 없는 옵션이었다는 점에서 현대건설 블로커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4세트가 돼서야 양효진이 실바의 파이프를 블로킹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실바의 파이프는 토스가 흔들린 상황만 아니라면 절륜한 위력을 발휘했다.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지점이다. 이렇게 강력한 옵션인 실바의 파이프를 왜 그 동안은 활용하지 못했을까. 대부분의 여자부 팀들이 외국인 아포짓의 파이프 옵션을 활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세연-최유림이 있을 때는 이동공격이 없기 때문에 실바의 파이프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권민지가 들어가면서 파이프 패턴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배구 공격의 정석이 있다. 바로 공격 상황에서는 코트 내에서 ‘죽은 공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터가 최종 선택을 하는 순간의 직전까지, 공격자의 코트에서는 왼쪽-중앙-오른쪽에 모두 공격 옵션이 배치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공간’이 없이 좌-중-우에서 동시에 공격수들이 준비하면 상대 블로커와 수비수들은 셋 중 어디를 막을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반대로 좌-중-우 중 공격 옵션이 배치되지 않는 ‘죽은 공간’이 생기면, 상대는 그 공간을 버리고 남은 두 공간에 블로커와 수비를 집중시킬 수 있다. 즉 공격수가 없는 ‘죽은 공간’을 내주는 순간 상대는 삼지선다에서 이지선다로 고민의 폭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우리의 공격이 답답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이 감독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기존 미들블로커 조합인 최유림-오세연은 이동공격을 거의 하지 않는 선수들이다. 이동공격은 중앙에 있던 미들블로커가 오른쪽 공간으로 스텝을 밟으며 때리는 공격이다. 두 선수가 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선수의 공격 위치가 경기 내내 중앙으로 고정돼 있다는 의미다.
이 상황에서 실바가 마찬가지로 중앙 공간을 활용하는 공격인 파이프를 준비하면 오른쪽 공간에서 나오는 공격 옵션이 전혀 없게 된다. 코트 오른쪽을 ‘죽는 공간’으로 만드는 선택이기에 아무리 실바의 파이프가 강력해도 선택하기가 부담스럽다. 상대 블로커 입장에서는 상대의 오른쪽을 패싱한 뒤 유서연-레이나가 있는 왼쪽에는 블로커를 한 명만 두고 중앙에 투 블록을 고정해 속공과 실바의 파이프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편안한 상황이 나온다.
그러나 최가은-권민지가 있을 때는 다르다. 최가은은 이동공격을 잘 쓰는 선수고, 권민지는 아포짓 경험도 있기 때문에 아예 오른쪽에서 퀵오픈이나 짧게 돌아나가는 공격을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선수는 오세연-최유림과 달리 공격 상황에서 오른쪽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실바를 중앙 공간으로 옮겨서 파이프를 활용해도 ‘죽는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미들블로커 조합이 바뀌면서 실바의 파이프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이유다.
다른 여자부 팀들이 외국인 선수들의 파이프를 적극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팀들이 이동공격이 가능한 미들블로커를 최소 한 명은 기용하기 때문이다. 최유림-오세연 조합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간 봉인 상태였던 실바의 파이프가 봉인 해제된 지금, 다른 팀들은 주전 미들블로커를 모두 잃은 팀이라고 GS칼텍스를 만만하게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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