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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땅에서도 꽃은 핀다, 남자부 신인선수들의 활약상과 전망

김희수 기자 / 기사승인 : 2025-12-02 13:30:52
2025-2026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KOVO

[더발리볼 = 김희수 기자] 2025-2026 한국배구연맹(KOVO) 남자 신인선수 드래프트가 지난 10월 27일에 열렸다. 18명의 선수들이 험난한 관문을 뚫고 프로팀에 입성했다. 역대 최저 취업률 기록이 또 한 번 새로 쓰이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땅에서도 꽃은 피는 법이다. 18명의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생존과 성장에 나섰다. 벌써부터 눈에 띄는 선수들도 있다. 현장에는 왜 찬바람이 불었을까. 또 선발된 남자부 신인선수들의 활약상과 전망은 어떨까.

또다시 취업난 속 최저 취업률 경신
고졸 얼리들은 신바람 

이번 드래프트의 최종 취업률은 37.5%였다. 48명의 지원자 중 18명만이 프로 선수가 됐다. 최근 3년 동안 남자배구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계속 최저 취업률 기록을 경신하는 중인데(2023년 47.6%, 2024년 43.75%, 2025년 37.5%), 올해는 낙폭이 무려 6.25%p까지 커지면서 40%의 벽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현장의 분위기는 서늘했다. 추가 선발을 간절히 원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팀에 닿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안타깝다는 것을 팀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7개 팀 중 유일하게 선수를 한 명만 뽑은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은 “지금 로스터에 있는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데 여기서 추가로 젊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의 순번이 더 빨랐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원자들에게는 프로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의 선수가 된다는 것은 나와 선수 간의 일종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과 같다. 서로를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주겠다는 합의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상황에서 선수를 뽑는 것은 그 합의를 지키지 못하는 데도 뽑는 것이고, 그건 선수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취업률의 꾸준한 저하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역시 첫 번째는 선수 퀄리티의 저하다. 최근에는 신인선수가 리그에서 곧바로 준주전급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당장 10년 전 2015-2016 드래프트만 봐도 전체 1순위였던 나경복은 하위권을 전전하던 우리카드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활약하며 만장일치 신인상을 받았고, 5년 전 2020-2021 드래프트의 전체 5순위인 박경민은 1년차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년차에 모든 수비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은 1라운더들도 데뷔 시즌에는 한 경기도 못 뛰기가 일쑤인 것과 대비된다. 

이로 인해 자격이 충분치 않은 선수가 억지 신인상을 받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한국배구연맹도 1~3년차로 대상을 확대한 영플레이어상을 신설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 팀에서는 이러한 선수 퀄리티 저하의 원인을 아마추어 단계에서의 육성 부재로 짚는다. 선수들이 충분한 기본기 훈련과 피지컬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채로 경기만 소화하면서 성장하기에 이미 ‘프로’가 된 선수를 또 ‘육성’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는 것. 프로는 자선사업 단체가 아니다. 불필요한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신인선수를 억지로 뽑아서 키우는 과정 자체가 돈과 시간의 낭비라고 진단한다.

결국 프로 팀은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고졸 얼리들에게 눈을 돌렸다. 아마추어 팀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우리가 빨리 데려와 키우는 게 낫다는 분석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6명의 고졸 참가자 중 4명이 프로 입성에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고졸 열풍이 불었다. 단순히 지명 숫자만 많았던 것이 아니다.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전체 1순위의 영광도 제천산업고 3학년 방강호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제천산업고 동기인 이준호와 정의영도 각각 1라운드 5순위와 2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하면서 제천산업고 3총사는 모두 빠른 순번으로 프로에 입성했다. U19 세계선수권에서 방강호-이준호와 함께 활약한 순천제일고 리베로 이학진도 2라운드 1순위라는 빠른 순번으로 KB손해보험의 유니폼을 입었다. 고졸 선수들의 잠재력과 실력이 프로 팀에게 높게 평가받은 셈이다.

한국전력 방강호./KOVO
삼성화재 이우진./KOVO

1-2순위 나눠 가진 방강호-이우진
다른 방식으로 성장 시작

전체 1순위를 두고 두 아웃사이드 히터 방강호와 이우진이 다툴 것임은 드래프트 전부터 예측 가능했다. 1순위 구슬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가 두 선수의 운명을 정할 상황이었고, 공격형 즉전감보다는 밸런스형 미래 자원을 원했던 한국전력이 1순위로 방강호를 선택했다. 반대로 즉시전력이 필요했던 삼성화재가 2순위로 바로 이우진을 데려갔다.

두 선수는 스타일과 경력이 다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탈리안 슈퍼리가 베로 발리 몬차로 향한 이우진은 실전 경험을 많이 쌓진 못했지만 프로 레벨의 훈련 시스템에 이미 1년 이상 적응한 상태다. 특히 처음 이탈리아로 향할 때와 비교했을 때 피지컬이 훨씬 더 탄탄해진 것이 눈에도 보인다. 또 비시즌에는 성인 대표팀에도 소집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로 인해 드래프트 전부터 이우진은 즉시전력으로 활약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았고, 실제로 김상우 감독은 1라운드부터 이우진을 실전에 투입했다. 송명근의 부상 이탈로 아웃사이드 히터 고민이 깊었던 삼성화재로서는 이우진의 빠른 합류가 반갑다. 김 감독은 이우진이 첫 선발 출전했던 1라운드 KB손해보험전 이후 “(이)우진이가 리시브를 잘 버텨주고 서브도 괜찮았다. 공격은 아직 보완이 필요하지만 자신의 몫을 해주면서 팀이 안정적으로 돌아갔다”고 이우진을 격려하기도 했다.

반면 방강호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고졸 이후 처음으로 프로 레벨의 훈련에 뛰어들었고, 리그 적응 기간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199cm의 신장에 전혀 맞지 않는 마른 체격을 키워야 한다. 이 부분이 같은 고졸 신인이었던 지난해의 윤하준과 달리 방강호가 빠르게 실전을 소화할 가능성이 낮은 가장 큰 이유다. 권영민 감독은 “기본적인 웨이트 자세부터 배우고 있다. 마른 편이다. 키는 199cm에 가까운데 몸무게는 78kg이다. 세심하게 챙기려고 한다. 시즌 초반에는 투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3라운드 지나고 나서 적응을 하면 투입하지 않을까 싶다”고 방강호의 육성 계획을 밝혔다. 이렇게 두 선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V-리그에서의 성장기에 돌입했다.

2025-2026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 참석자들이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KOVO

1주일도 안 돼서 데뷔전! 
빠르게 리그에 녹아드는 선수들

갈수록 신인 선수들의 데뷔 시점은 밀리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1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빠른 데뷔에 성공한 선수들이 있다. 가장 먼저 데뷔전을 치른 선수는 OK저축은행 강선규였다. 강선규는 11월 2일에 치러진 현대캐피탈과의 1라운드 맞대결에서 서베로로 코트를 밟으며 드래프트에서 뽑힌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데뷔전을 치렀다. 리시브 실수가 한 차례 있긴 했지만 무난하게 제몫을 했고, 형들도 강선규의 데뷔를 축하했다. 여기에 팀 승리까지 더해지면서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 강선규였다. 신영철 감독은 “강선규가 센스가 있는 선수인데, 볼을 툭툭 치듯이 받는 버릇이 있다. 이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이것만 고친다면 부용찬과 정성현도 긴장해야 할 것 같다”며 강선규를 칭찬했다. 이에 강선규는 “프로에 와서 형들이랑 운동할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진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감독님께서 짚으신 부분 말고도 부족한 부분은 정말 많다.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형들을 넘진 못하더라도 어깨를 나란히 해보고 싶다”고 신 감독에게 화답했다. 같은 날 현대캐피탈 장아성도 빠른 데뷔전에 나섰다. 경기 시작 전부터 “장아성의 가치를 훈련을 통해 확인했다. 수비와 리시브에서 팀에 퀄리티를 더해줄 수 있는 선수다”며 장아성의 출전 가능성을 예고한 필립 블랑 감독은 4세트에 장아성을 코트에 내보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충남대 4학년 신분으로 나선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신 뒤 실업 무대로 넘어가 절치부심하며 재수에 나섰던 장아성으로서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충남대에서 함께 뛰었던 김진영-임성하와 다시 뭉친 장아성의 향후 활약상이 기대된다.

강선규와 함께 OK저축은행에 합류한 마유민도 빠르게 V-리그 무대에 올랐다. 마유민은 11월 6일 한국전력전에서 교체로 코트를 밟았다. 외국인 선수들의 동반 부진으로 경기 흐름이 어려웠던 상황에 등장한 마유민은 대학 시절 자신의 최대 강점이었던 과감한 공격으로 3점을 올리며 깜짝 활약을 펼쳤다. 외국인 선수들의 존재로 인해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대학 아포짓들에게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신 감독은 “대학에서의 경기를 봤을 때 스윙에 강점이 있더라. 이제는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정도의 기회는 앞으로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출발선에 선 마유민을 격려했다.

1라운드까지 공식 데뷔전을 치르진 못했지만, 곧 데뷔전을 기대해 볼만한 선수도 있다. KB손해보험의 1라운더인 미들블로커 임동균이다. 한양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한 임동균은 198cm의 신장에 준수한 운동능력과 하이브리드 서브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KB손해보험은 현재 박상하가 근육 부상으로 결장 중이고, 주력 원 포인트 서버도 없는 상황이다. 임동균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있다. 만약 임동균이 이준영과 함께 미들블로커로 나선다면 2024년 한양대의 U-리그 우승을 합작했던 미들블로커 듀오가 프로에서 다시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대학 배구 팬들에게 흥미로운 순간을 선사할 전망이다.

미완의 대기들, 시간이 필요해

그러나 상술한 선수들은 ‘아웃라이어’에 가깝다. 결국 전반적인 아마추어 배구의 수준이 저하된 상황에서 신인 선수들 대부분은 프로 무대에서 추가적인 담금질을 필요로 한다. 드래프트 동기인 강선규-마유민이 모두 데뷔전을 치렀지만 정작 OK저축은행의 1라운더인 박인우는 아직 코트를 밟지 못했다.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장신 세터지만 프로에 걸맞은 피지컬을 갖추지 못했다. 웨이트와 유연성 보강이 필요하다. 우리카드의 1라운더 손유민도 좋은 신장과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을 갖췄지만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약간의 체형 교정을 해야 한다. 당장 경기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카드 강건희나 한국전력 김민철처럼 대학 무대에서 팀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들 역시 프로 레벨의 기술과 피지컬을 갖추려면 아직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다. 

방강호와 함께 고졸 얼리로 드래프트를 통과한 이학진·정의영·이준호도 아직은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 이학진은 기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펼친 김도훈을 넘어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정의영도 료헤이와 강승일이 있는 대한항공의 리베로 뎁스를 뚫기는 역부족이다. 대한항공에 함께 입단한 이준호도 마찬가지다.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지만 어느 한 쪽 뎁스가 얇은 곳이 없는 팀이 대한항공이다. 하지만 고졸 얼리 선수들에게는 시간이라는 무기가 있다. 조급해하지 않고 성실하게 몸과 기술을 가꾸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2025-2026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 결과./KOVO

또 하나의 수련선수  신화 가능할까?

이번 드래프트에서 수련선수로 선발된 인원은 총 네 명이다. 삼성화재 김민혁, 우리카드 박상우, 대한항공 김영태, KB손해보험 임지우가 그들이다. 네 선수 모두 대학 무대에서는 주전급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다. 김민혁은 윤경의 합류 이후 비중이 줄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 팀의 주전 아포짓으로 활약한 선수고, 박상우는 대학 무대에서 가장 압도적인 사이드 블로킹을 자랑한 장신 세터다. 김영태는 어린 선수들 위주로 짜인 2025년 경희대에서 마윤서와 함께 중심을 잡았고, 임지우는 이번 시즌에 하이 볼과 후위에서의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수련선수라는 신분 자체가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정식선수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공식전에 나설 수 없고, 팀에 따라서는 제대로 된 볼 운동을 할 기회조차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정식선수로 전환되는 빈도도 그렇게 높지는 않다. 수련선수로 입단한 뒤 1년 만에 소리 소문 없이 V-리그를 떠나는 선수들이 많은 이유다. 정식선수가 된다 해도 이후 경기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배들은 있다. 김홍정, 이준협, 김다솔처럼 수련선수 출신으로 V-리그에서 자리를 잡고 이를 악물고 버틴다면, 이 네 명의 선수 중 또 하나의 수련선수 신화를 써내려갈 주인공이 나올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더발리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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