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대한항공 연습체육관(신갈) 이보미 기자] <더발리볼>은 배구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구로 묶인 가족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국가대표 세터 출신 아버지를 따라 똑같이 세터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다. 금성사 시절 코트를 누볐던 최영준, V-리그 3년차 최원빈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8년 금성사에 입단한 아버지
2024년 V-리그 무대에 오른 아들
Q. 같이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일까요.
최원빈 네 처음이에요. 예전에 아빠랑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반항하는 마음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이제 ‘최원빈의 아빠’ 최영준이 될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최영준 감회가 새롭네요. 일단 여기 대한항공 훈련장도 오랜만에 와요. 현역 때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저도 ‘최원빈의 아빠’로 불리는 게 좋아요.
Q. ‘최영준의 아들’, ‘최원빈의 아빠’라는 수식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영준 고등학교 때까지 학부형으로 다니다보면 아들이 ‘최영준의 아들’로 더 많이 불렸던 것 같아요. 어느 시점에는 ‘최원빈의 아빠’로 바뀌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온 것 같아요. 원빈이가 잘해줘서 이런 기회까지 왔네요(웃음).
원빈 고등학교나 대학교 가서 ‘최영준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좀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짓누르는 부담감까진 아니지만 어딜 가든 예의바르게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영준 저도 그래요. 아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Q. 1988년 금성사에 입단한 뒤 LG화재 수석코치, KB손해보험 사무국장까지 경험하셨어요.
영준 1997년 은퇴한 이후로 회사 부서 발령을 받은 뒤로도 한 번씩 배구단에 파견이 됐던 것 같아요. 2000년에 사무국에 들어왔다가 2001년에는 3년 동안 수석코치를 맡았고요. 2007년에는 박기원 감독님이 계실 때 세터 인스트럭터로 1년을 지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2015년에는 사무국장으로 왔었죠.
Q. 원빈 선수도 어릴 적 놀이터가 배구장이었겠네요.
원빈 어릴 때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박기원 감독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식사를 했던 게 생각나요. 또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 아빠랑 같이 배구 보러 가서, 코트랑 가까운 좌석에 있었어요.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박기원 감독님이 저희를 보시고 ‘영준아’라고 부르시더라고요. 나중에 옆에 계신 분이 ‘아버님 배구 선수냐’고 물어봤던 것도 기억나요.
영준 원빈이가 체육관에 종종 놀러왔죠. KB 체육관에 와서는 그때 당시 팀 주장이었던 권영민 세터가 원빈이랑 같이 놀아주기도 했고요. 김호철 선배가 감독 시절에도 만나고 그랬어요(웃음).
Q. 원빈 선수가 2024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대한항공 지명을 받았죠. 그때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영준 코치나 사무국 직원으로 드래프트 현장에 가곤 했는데, 선수 부모로 앉아있으니 남달랐죠. 또 다른 선수들 부모님이랑 같이 보는데 울컥했죠. (원빈 선수가 지명을 받고 단상 위에서 크게 파이팅을 외쳐서 눈길을 끌기도 했어요.) 아마 각오의 표현이지 않았나 싶어요.
원빈 단상 위에 올랐을 때 부모님이 잘 안 보였어요. 집에 가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어요.
영준 배구를 12년 동안 하고 드래프트에 나가서 프로 지명까지 받았으니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것 같아요.
원빈 집에 갔을 때는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이제 시작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서로를 닮은 두 세터
Q. 아들이 배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원빈 원래 운동선수가 꿈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고요. 그런데 부모님이 딱 배구 하나만 빼고 시켜주셨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교실에 있다가 배구 선수 모집 방송을 들었어요. 관심이 있으면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단번에 내려갔죠. 배구팀에 지원을 하면서 부모님 성함도 적으라고 했어요. 매번 엄마 이름 적다가, 그날은 아빠 이름을 썼어요(웃음).
영준 그때 아들이 배구부 감독님한테 ‘우리 아버지도 배구선수였다’고 말했나 봐요. 저한테 계속 배구를 시키자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4개월 동안 말리다가 아들이 계속 배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아내가 테스트라도 보게 하자고 해서 그렇게 시작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배구를 시키길 잘한 것 같아요. 배구를 통해서 아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좋아요.
원빈 원래 대화가 많은 편이라 배구 안 했어도 얘기를 많이 했을 걸요?
Q. 그럼 원빈 선수는 어떻게 세터가 됐나요.
원빈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 보자마자 세터라고 하시면서 세터 훈련을 시키셨어요(웃음). 전 사실 공격수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쉬웠는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세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일본 배구처럼 우리끼리 2단 토스도 따라하면서 재미를 느꼈죠. 대학교 때는 상대 블로킹을 속이는 재미를 즐겼고요. 경기대에서는 빠른 배구를 해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Q. 아버지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겠어요.
영준 점점 줄었죠. 가끔 물어보면 최대한 알려주고 싶어서 말이 길어지긴 해요. 잔소리도 있을 거고요. 이제는 알아서 하겠죠(웃음).
원빈 지금도 하셔요. 1을 물어보는데 10이 와요(웃음).
Q. 아들의 경기는 모두 보러 다니셨다고요.
영준 저희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한 번도 안 빠지고 직접 경기를 보러 오셨어요. 저도 12년 동안 원빈이 경기 보러 휴가 내고 다녔죠. 그렇게 다니면서 아들이 플레이 하는 걸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토스 자세나 손모양, 파이팅 하는 액션 등이 저랑 닮았어요. 제 동기들이나 후배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러다가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지날 때쯤인가. 아내와 딸이랑 같이 차 타고 가면서 ‘이제 제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걱정 안하고 내려놔도 될 것 같다. 부담 갖지 말고 부상 없이 이대로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죠. 처음 그런 얘기를 하니까 가족들도 놀라더라고요. 어느 순간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빈이 아빠’ 얘기를 듣겠구나 싶었죠. 아들에게 고마워요.
Q. 서로 어떤 부분이 닮았나요.
원빈 경기에 지면 많이 울었거든요. 올해 퓨처스 대회에서도 근육 경련에도 참고 뛰었는데 다 아빠를 닮았대요. 대학 시절에는 김찬호 감독님이랑 우연히 만났는데 갑자기 ‘하는 행동이 네 아빠랑 똑같다’고 말해서 놀란 적도 있어요(웃음).
영준 특히 경기대 이상렬 감독은 저랑 50년 지기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운동을 했거든요. 고맙게도 항상 저보다 낫다고 말해줘요. 경기 졌을 때 고개 숙이고 있는 것조차 똑같대요.
Q. 금성사 시절의 배구와 현대 배구 스타일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영준 예전에는 랠리 포인트제가 아니고 사이드아웃제로 운영이 됐죠. 그래서 득점을 바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서브권을 가져갔잖아요. 그래서 더 과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행위로도 득점이 바로 나오죠. 그래서 요즘에는 더 세밀해야 하고, 탄탄한 기본기가 중요해요. 경기 시간도 과거에 비해 짧아졌지만 그만큼 순간적으로 파워를 많이 써야 하고요. 3~5세트에 온 힘을 써야하죠.
Q. 세터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요.
영준 리더십이요. 야구는 포수, 축구는 미드필더가 중요하죠. 배구는 세터놀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코트 위 사령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팀을 이끌어 가야 해요. 더군다나 배구는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세터의 리더십을 통한 팀 조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원빈 전 어렸을 때 무조건 상대 블로킹을 따돌려서 공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해 퓨처스 대회를 치르면서 느낀 건 ‘세터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실업팀과 조별리그 경기에서 1세트를 내주고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형들이 ‘세터가 그렇게 있으면 다 못한다’는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때 느낀 게 컸죠.
Q. 최영준에게, 그리고 최원빈에게 세터란.
영준 배구의 전부입니다.
원빈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거라고 할게요.
Q. 아버지를 뛰어 넘었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면요.
원빈 아빠가 직접 뛰는 건 못 봤으니까 다 뛰어 넘은 걸로 할게요(웃음). 압도적으로 뛰어 넘은 건 서브 파워요. 또 경기대 감독님이 2단 토스의 힘은 아빠보다 낫다고 말해주셨어요. 사실 그거 말고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아들이요? 딸 같은 아들이에요. 효자죠”
Q. 평소에는 어떤 아들인가요.
영준 딸 같은 아들이에요. 든든하기도 하고요. 유머도 있으면서 착한 아들이죠. 효자예요. 또 고마운 게 크게 아픈 적도 없어요. 사춘기도 잘 지나갔고요. 잘 자라줘서 고맙고, 지금 같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평소에는 어떤 아버지인가요.
원빈 평소에도 말이 많으셔요(웃음). 예전에는 친구 같았다면 요즘은 다소 ‘꼰대’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아요.
Q. 배구 여행도 종종 다녀오셨다고요.
영준 원빈이가 대학교 다닐 때 일본 리그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4박 5일로 다녀왔어요. 하루에 3만 5000보씩 걸었어요(웃음). 제가 봐도 아들이 배구에 미친 것 같아요. 세계 선수들도 다 꿰고 있고요. 해설도 가능한 수준인 것 같아요. 작년에는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했고요. 대견해요.
원빈 도쿄 체육관에 갔는데 크기부터 다르더라고요. 나고야에 가서도 재밌게 봤고요. 그런데 필리핀은 그 크기의 두 배 정도였어요. ‘여기서 어떻게 배구를 할까’ 싶더라고요. 저도 여기서 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2026-2027시즌 대한항공은 아시아쿼터 선수로 세터 야마모토 류 선수를 데려왔죠.
원빈 처음에는 세터 선수 영입 소식을 듣고 놀라긴 했죠. 원래 야마모토 선수를 알고 있기도 했어요. 어느 포지션이든, 어느 팀에 가든 그런 경쟁은 늘 있는 거잖아요. 아포짓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고요. 저도 아시아쿼터 선수와 경쟁을 해서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죠. 몸 상태도 좋고요. 새 시즌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Q.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영준 어떻게 보면 지금 사회초년생이랑 마찬가지죠. 이겨내야 하는 것도 제 몫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선수들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 아들은 더 큰 꿈을 품고 어느 무대에서든 마음껏 코트를 누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또 부상 없이 팀에 보탬이 되고, 대한민국 배구 발전에도 기여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원빈 먼저 아빠가 술을 좀 줄이셨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최근에 유럽이랑 일본을 다녀오셨는데, 편안하게 세계 여행도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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