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순위 싸움과 감독대행 유행 속 ‘박철우 매직’ 그리고 부산 시대 [정규리그 결산]
최병진 기자
cbj0929@thevolleyball.kr | 2026-03-23 09:00:14
[더발리볼 = 최병진 기자] 치열했던 진에어 2025-2026시즌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가 모두 끝났다. 이번 시즌은 정규리그 1위부터 봄 배구 주인공까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싸움 끝에 순위가 결정됐다. 그 속에서 감독대행이 대거 등장했고, ‘박철우 매직’이 후반기를 휩쓸었다. 그리고 새 출발임에도 기록적인 흥행 파워를 이뤄낸 ‘부산 시대’까지. 뜨거웠던 남자부의 정규리그 5개월 여정을 돌아본다.
난기류 이겨낸 ‘헤난호’ 대한항공의 정규리그 정상 정복
대한항공은 2024-2025시즌을 끝으로 4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이별했다. 지난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현대캐피탈을 넘어서기 위한 변화를 선택했다. 대한항공은 브라질 출신의 명장 헤난 달 조토 감독을 선임했고 KOVO컵 정상에 오르며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대한항공은 시즌 초반에 현대캐피탈이 주춤하는 사이 빠르게 승점을 쌓았다. 전반기에 파죽의 10연승을 달리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부상 변수가 찾아왔다. 다수의 공격 지표에서 1위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치던 ‘에이스’ 정지석이 3라운드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다. 이어 헤난 감독 체제에서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받은 임재영마저 이탈했다. 임재영은 우리카드와 경기 중 무릎 반월상 연골판을 다쳐 수술을 받게 됐다. 주축 아웃사이드 히터 두 명이 빠지자 대한항공은 크게 흔들렸고 선두 자리를 현대캐피탈에 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무너지지 않았다. 날개가 꺾인 위기 속에서 아시아쿼터 교체를 결단했다. 주전 리베로인 료헤이와 이별하고 호주 출신의 아웃사이드 히터 이든을 합류시켰다. 료헤이가 뛰어난 경기력으로 수비의 중심을 잡아줬지만 부상이 연이어 발생한 아웃사이드 히터진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든은 주전이 아닌 백업 역할을 맡았다. 당초 부상 회복에 8주가 걸릴 것이라 예상됐지만 한 달 만에 복귀한 정지석과 정한용이 선발로 나섰고 이든이 뒤를 받쳤다. 이든은 정한용의 허리가 좋지 않았던 OK저축은행과 5라운드 경기에서 한국 무대 첫 선발 출전을 기록했다. 그는 13점을 올리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또한 삼성화재와의 6라운드에서도 13점을 뽑아냈다. 료헤이가 빠진 주전 리베로 자리는 2022-2023시즌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강승일이 맡았다. 여기에 신예 정의영과 베테랑 아웃사이드 히터 곽승석이 리베로 역할을 수행했다. 위기 상황에서도 빠른 변화를 택했고 이는 반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과의 6라운드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1위를 눈앞에 뒀다.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와의 최종전에서 일격을 당하며 대한항공이 두 시즌 만에 왕좌에 올라섰다.
헤난 감독은 한국 무대 첫 시즌임에도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그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단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는 베테랑 세터 한선수와 베테랑 미들블로커 김규민, 그리고 부상으로 시즌 막바지에 복귀했지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임재영까지. 헤난 감독이 강조한 실전과 같은 훈련을 소화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또한 상대 스타일에 따라 정한용과 임재영을 정지석의 파트너로 활용하는 맞춤 전술도 효과를 봤다. KOVO컵 우승과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대한항공은 이제 챔피언결정전 트로피까지 바라보며 ‘트레블’을 꿈꾼다.
대한항공의 정규리그 1위가 확정되면서 현대캐피탈은 플레이오프에 나서게 됐다. 블랑 감독 2년 차를 맞은 현대캐피탈은 시즌 초반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허수봉과 박경민, 전광인(OK저축은행)과 트레이드로 현대캐피탈에 합류한 신호진이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며 프리시즌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다. 시즌 개막 후에는 부상도 찾아왔다. 주전 세터 황승빈이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고 후반기에는 최민호까지 손가락을 다쳤다. 그럼에도 허수봉과 레오의 쌍포를 중심으로 경기력을 회복하며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6라운드에 팀이 흔들렸다. 신호진이 리시빙 아포짓으로 허수봉과 레오의 리시브 부담을 줄여줬지만 공격에서 결정력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레오와 허수봉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동시에 황승빈도 시즌 막바지에 토스가 불안하게 연결되면서 팀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경기가 반복됐다. 플레이오프를 위해 자체 점검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다.
대세로 자리 잡은 ‘감독대행’ ‘박철우 매직’ 빛났다
이번 시즌 V-리그를 관통한 이슈는 단연 감독대행이다. 남자부 7개 팀 중 절반에 가까운 3팀이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렀다. 삼성화재는 남자부에서 가장 먼저 사령탑을 교체했다. 시즌 초 10연패의 악몽에 빠지면서 김상우 감독이 자진 사임했다. 그러면서 고준용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고 감독대행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삼성화재 선수로 뛰며 은퇴 후에도 코치로 팀을 지켰다. 그만큼 삼성화재를 잘 아는 인물에게 감독 역할을 맡기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삼성화재는 고 감독대행 체제에서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전 18경기에서 2승에 그쳤지만 고 감독대행 아래 치른 7경기에서 3승을 추가했다. 중반부터 공격력을 보여준 이윤수와 리시브가 뛰어난 아웃사이드 히터 황두연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패배가 다시 시작됐고 구단 역대 최다인 13연패로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현대캐피탈과 6라운드에서 3-1로 승리하며 13연패에서 탈출했지만 최하위인 7위를 면할 순 없었다.
우리카드와 KB손해보험도 사령탑과 이별했다. 공교롭게 지난 시즌부터 팀을 이끌었던 외국인 감독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리카드는 지난해 12월 30일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이 떠났다. 박철우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는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KB손해보험도 레오나르도 카르발류 감독을 대신해 하현용 감독대행을 선임했다. 두 팀의 목표는 확실했다.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봄 배구 진출권을 따내겠다는 것. 결과적으로 KB손해보험은 3위를 차지했고 우리카드는 4위로 맞대결을 갖게 됐다.
후반기 주인공은 단연 우리카드였다. 박 감독대행은 돌풍을 일으키며 2023-2024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이후 2년 만에 팀에 봄 배구를 선사했다. 파에스 감독 아래 18경기에서 6승 12패로 승률 33.3%에 그친 우리카드는 박 감독대행 체제에서 완전히 팀이 달라졌다. 5라운드에서 5승 1패로 상위 4팀을 모두 잡아낸 뒤 6라운드에서도 선두 대한항공과 2위 현대캐피탈을 모두 꺾으며 또 5승 1패를 기록했다. 박 감독대행과 치른 18경기에서 14승 4패 승률 77.8%로 4위를 기록하며 준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박 감독대행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지난 2024년에 은퇴를 했다. 이후 1년 동안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한 뒤 이번 시즌에 우리카드 코치로 합류했다. 자신의 첫 지도자 커리어지만 그만큼 선수들과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박 대행과 선수 시절을 함께 했던 김지한, 이시몬 등은 시즌 초부터 “코치님보다 아직 형이라는 호칭이 편하다”고 할 정도였다. 박 감독대행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면서 팀을 하나로 뭉쳤다. 그는 “선수들에게 포지션별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배구의 기본을 지키면서 선수들과 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과감한 선택도 주효했다. 박 대행은 경기 중 적극적으로 교체 카드를 활용하며 흐름을 바꿨다. 시즌 초에는 기회를 받지 못했던 세터 이승원과 아웃사이드 히터 한성정, 이시몬 등은 ‘게임 체인저’로 투입되며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면서 팀 내 경쟁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는 주축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에 다녀온 뒤 흔들렸던 세터 한태준과 아웃사이드 히터 김지한이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외인 듀오 알리와 아라우조의 파괴력도 올라가며 후반기 최고의 팀에 올랐다.
KB손해보험도 천신만고 끝에 3위에 랭크됐다. KB손해보험은 하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치르던 중 야쿱이 개인사정으로 팀을 떠나면서 급하게 인도 출신의 아밋을 합류시켰다. 그러면서 팀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극적으로 봄 배구 진출 티켓을 획득했다. KB손해보험은 우리카드가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한국전력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3-0 승리를 거두며 봄 배구행 마지막 열차에 올랐다.
흥행 대박! ‘부산 팬심’ 저격한 OK저축은행
부산 연고지 이적은 신의 한 수였다.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연고지를 안산에서 부산으로 옮겼다. OK저축은행의 연고 이전은 프로배구단이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새로운 지역 연고 기반을 마련해 배구의 전변을 확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많은 기대 속에서 부산 생활이 시작된 가운데 첫 시즌부터 일명 ‘대박’을 쳤다. 지난해 11월 대망의 부산강서실내체육관 홈 개막전에서 4270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이어 11월 우리카드전 4032명, 지난 1월 삼성화재전 4171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3월에 펼쳐진 현대캐피탈전(4194명)과 대한항공전(4102명)까지 7경기 매진을 이루며 이번 시즌 ‘주말 홈 전 경기 매진’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특히 현대캐피탈과의 지난 1월 9일 경기에서는 4070명으로 전 구단 최초 평일 경기 매진도 이뤄냈다. 안산을 연고로 하던 지난 시즌 총 관중 수 2만 7403명은 6만 17명까지 늘어났다. 119% 증가했다. 평균 관중 수 또한 3334명으로 이번 시즌 유일하게 평균 관중 수가 3000명대인 팀이 됐다. 스포츠를 향한 부산의 열기와 함께 구단의 노력이 이루어진 결과다. 부산강서실내체육관은 부산에 위치하지만 김해와도 근접하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관중의 20% 정도가 김해에서 방문한 팬들이다. 그러면서 부산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니폼을 제공했다. 해당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을 경우 무료입장을 시키면서 부모를 유료관중으로 이끌었다. 전력적인 마케팅과 함께 강서실내체육관만의 이색적인 즐길 거리도 한몫을 했다. 최고의 춤을 보여준 팬을 ‘팬 오브 더 매치’로 선정하거나 양 팀 치어리더가 댄스 배틀을 펼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응원곡이자 사직경기에서 불리던 ‘부산 갈매기’도 강서실내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부산은 원정 팀들의 무덤이 됐다. OK는 홈에서 치른 18경기 중 15승을 따내며 72%의 승률을 기록했다. 승리가 반복되면서 구름 관중도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됐다. 원정팀은 부산까지 원정을 와야 하는 장거리 이동으로 체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열광적인 경기장 분위기도 감당해야 한다. “부산에서는 못 이기겠다”는 한 구단 관계자의 농담 섞인 이야기에서 원정팀들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산에 봄은 찾아오지 못했다. OK저축은행은 홈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였지만 반대로 원정에서는 경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원정에서 2승 16패로 홈 성적과는 극과 극이다. 신영철 감독도 이를 두고 “경기력의 평균이 없다”고 여러 차례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포 역할을 해줘야 하는 디미트로프는 시즌 내내 해결사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초반 타점 높은 공격과 서브를 자랑한 차지환도 서브에서 입스가 온 후 흔들렸다. 베테랑 전광인이 고군분투했으나, 팀 전체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치던 후반기에는 아시아쿼터 교체라는 강수까지 꺼내 들었다. 미들블로커 오데이 대신 지난 시즌에 뛰었던 세터 쇼타를 데려왔다.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하며 체력적인 문제가 겹친 이민규의 조력자를 합류시키며 마지막 반등을 노리려 했으나 끝내 6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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