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양효진
이보미 기자
bboo0om@thevolleyball.kr | 2026-03-27 13:50:04
[더발리볼 = 이보미 기자] ‘살아있는 레전드’ 양효진이 2025-2026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V-리그에서만 쉼 없이 19시즌을 소화한 양효진이다. 코트 위에서 꾸준히 중앙을 지킨 그의 화려한 발자취를 돌아봤다.
‘거요미’부터 ‘블로퀸’까지
현대건설 양효진의 19년
3월 3일 현대건설은 “양효진이 오랜 고민 끝에 2025-2026시즌을 마지막으로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양효진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과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구단에 깊이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의 가르침, 그리고 함께 땀 흘린 동료 선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남은 시즌 마지막 순간까지 현대건설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며 소회를 전했다. 현대건설 구단 관계자는 “양효진이 팀에 남긴 족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그녀의 헌신에 걸맞은 최고의 예우로 마지막 길을 배웅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1989년생 양효진은 부상수정초-부산여중-남성여고를 거쳐 2007-2008시즌 V-리그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 지명을 받았다. V-리그 데뷔 이후 현재까지 19시즌 동안 오직 현대건설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해온 구단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리그를 대표하는 미들블로커로서 압도적인 블로킹 능력과 속공, 꾸준한 득점력을 앞세워 팀의 수많은 승리와 우승을 견인했다. 특히 코트 위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리더로서, 코트 밖에서는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며 현대건설 배구단의 역사를 함께 써왔다.
그렇게 ‘원 클럽맨’으로 쉼 없이 달렸다. 그만큼 화려한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V-리그 남자부, 여자부 통틀어 역대통산 득점 1위와 블로킹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양효진은 567경기 2180세트 출전, 8406득점을 기록했다. 현역 선수 중 2위 박정아(6423점)와도 격차가 크다. 3위 황연주(5868점), 7위 배유나(4596점), 8위 김희진(4432점), 9위 모마(4253점), 10위 강소휘(4156점) 등이 차례대로 순위에 위치했다. 블로킹 부문도 마찬가지다. 양효진은 1748개의 블로킹을 성공시켰다. 역시 현역 선수 가운데 3위 김수지(1080개), 4위 배유나(1022개), 8위 김희진(661개), 9위 박정아(585개), 10위 이주아(510개)를 크게 따돌렸다. 양효진의 기록이 깨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울러 19시즌 동안 정규리그 MVP 2회, 챔피언결정전 MVP 1회 수상하며 ‘별 중의 별’이 되기도 했다. 2009-2010시즌부터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를 차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동시에 V-리그 베스트7도 10회 수상했다. 역시 V-리그 최다 기록이다. ‘블로퀸’으로 불린 이유다.
이번 시즌에도 양효진은 현대건설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35경기 139세트를 치르면서 460점을 기록했다. 득점 9위에도 랭크됐다. 국내 선수 중에서도, 미들블로커로서도 리그 득점 TOP10에 포함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양효진은 19시즌 중 16차례 득점 TOP10에 이름을 올렸다. 블로킹 2위와 속공 3위를 차지하며 팀의 봄 배구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했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2012 런던, 2016 리우,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런던과 도쿄에서 두 차례 4강 주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2, 2016 올림픽 세계예선에서는 베스트 미들블로커로도 선정된 바 있다. 오랜 기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여자배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양효진의 라스트 댄스
3월 8일에는 현대건설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페퍼저축은행이었다. 현대건설은 경기 직후 양효진 은퇴식을 개최했다. 홈에서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이날 은퇴식에는 ‘든든한 지원군’ 가족과 함께 ‘절친’ 김연경, 나란히 ‘리빙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전력 미들블로커 신영석 등이 함께 했다.
먼저 양효진의 19시즌 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헌정 영상이 상영됐다. 흥국생명 이다현, 페퍼저축은행 한유미 코치, 한국도로공사 황연주 등 동료들의 영상 편지도 이어졌다. “현대건설의 레전드 양효진, 멋있다! 수고했어! 제2의 인생도 응원할게”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절친’ 김연경은 “잠깐의 노력은 쉬울지 몰라도, 꾸준한 노력을 보여주는 건 어렵다. 꾸준한 노력이 지금의 양효진을 만들었다. 코트에서 보낸다는 게 아쉽겠지만 웃으면서 우리 효진이 보내줬으면 한다. 제2의 인생 응원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양효진의 14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눈물을 쏟은 양효진은 마이크를 잡고 “코트에서 안 떠는 성격인데 오늘 많이 떨었던 것 같다. 처음 신인 시절 여기서 첫 발 내딛을 때 여기서 마무리를 할 거라 생각 못했는데, 그래도 배구 하나만 계속 보고 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팬분들이 경기장에 많이 와주시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배구 선수로서 뿌듯하고 감사하다”며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이후 양효진은 구단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팬사인회를 개최하며 은퇴식을 마무리 지었다.
은퇴식을 모두 마친 뒤 인터뷰실에 들어온 양효진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구단, 감독님, 선수들한테 알릴 때 마음이 그랬지만 다 홀가분했다. 그런데 막상 은퇴식을 한다고 하니깐 전날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다.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복합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가족들과 사진도 찍고, (김)연경 언니와 신영석 선수를 거쳐 (김)다인 언니와 감독님까지 만났다. 그 얼굴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희로애락이 느껴졌다. 같이 지냈을 때 힘들었던 거, 즐거웠던 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진짜 안 울려고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양효진이 은퇴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그는 “4년 전부터 1, 2년 하다가 그만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도 이 정도하면 은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하고 있을 때 그만 두고 싶었다”면서 “그만둘 때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더라. 원래는 작년까지 하고 은퇴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구단에서 1년 더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1년 더 한 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가족 그리고 지인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양효진은 “가족들과는 작년에 상의를 많이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됐던 것 같다. 연경 언니는 작년부터 1년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경험자로서 혼자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는 마무리를 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 소중한 순간이 된다고 말해줬던 것 같다”고 전했다.
양효진의 남편은 아내의 결정에 따랐다. 양효진은 “나와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이다. 내가 쌓아온 게 많아서 그런지 먼저 의견을 말해주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장난으로 ‘은퇴할까’라고 물으면 ‘마음대로 해라’고 답했다. 내 선택을 존중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 양효진은 “신인 때부터 목표를 세웠다. 첫 시즌을 겪은 뒤 상을 많이 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 다음 기록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었고,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MVP까지 받고 싶었는데 이뤘다. 마지막에는 오히려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선수가 되고 싶더라. 그게 종착지였다. 그 뒤로 마음도 홀가분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한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양효진은 “얼마 전에 기록을 세웠는데 아무래도 기록을 오래 쌓았다보니 기록상을 안 받은 지 오래됐다. 그래서 후배들이 이벤트를 해줬다. 꽃다발과 선물, 편지까지 받았다. 그 편지 내용이 감동적이었다”면서 “늘 후배들은 같이 운동해서 좋다 혹은 배울 점이 많아서 좋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 또한 지금 후배들이랑 같이 해서 정말 좋았다. 배구를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지 고민을 하는 동료들이지 않나. 같은 방향을 보고 갈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고 힘줘 말했다.
숱한 별명 속에서도 ‘거대한 귀요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양효진은 “런던올림픽을 다녀와서 생각지도 못한 별명이 붙었다. 어린 나이에 신기했다. 그 때 팬분들도 많이 유입되지 않았나. 아마 키도 큰데 얼굴에 살이 많아서 그렇게 붙여주신 것 같은데, 지금도 조금 부끄럽다”고 했다.
‘블로퀸’, ‘영원한 14번’, ‘거요미’ 등 양효진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앞으로는 또 어떤 수식어가 기다리고 있을까.
양효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동료들의 응원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
“지난 시즌 끝나고도 얘기가 오갔는데 이번 시즌 함께 했다. 양효진이 잘 해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다. 우리가 붙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건강하게 마무리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더 해도 되는 몸이지 않나, 현역 연장해도 되지 않겠냐고 했는데 본인도 계획이 있다고 했다.”
현대건설 김다인
“언니에게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주고, 언니를 웃게 해주고 싶다. 감독님께서 은퇴식에서 졌으니, 챔프전에서는 웃자고 하더라. 이제 남은 경기들은 모두 뒤가 없는 경기들이다. 후회 없이 도망가기보다는 부딪치면서 팀으로 뭉쳐 하고 싶다. 꼭 챔프전에 가서 효진 언니를 웃게 하겠다.”
한국전력 신영석
“양효진 선수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기댔던 것 같다. 양효진 선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 영광이었다. 그런 선수는 안 나올 것이다. 레전드의 길을 걷는 선수다. 예전에 양효진 선수가 1500블로킹했을 때 당시 내가 경솔하게 양효진 선수를 목표로 달려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생에도 양효진 선수의 기록을 잡는 건 힘들 것 같다.”
페퍼저축은행 시마무라
“한국에서 베스트 미들블로커라고 불리는 선수다. 페인트 공격인데도 왜 못 잡을까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효진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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