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했던 ‘월드 클래스’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 해피엔딩이었다 

심혜진 기자

cherub0327@thevolleyball.kr | 2025-04-12 13:50:08

김연경이 우승을 확정한 후 미소를 짓고 있다. /KOVO

[더발리볼 = 인천산삼월드체육관 심혜진 기자] ‘선수’ 김연경이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으로 2005-2006, 2006-2007, 2008-2009시즌에 이어 다시 한국에 돌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 MVP 수상 이후 16년 만인 2024-2025시즌에도 ‘별 중의 별’이 됐다. 

그렇게 김연경은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는 “마지막에 살짝 눈물이 났는데 펑펑 울진 않았다”고 말하며 웃은 뒤 “은퇴하는 시기에 통합 우승을 하고,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받는 선수가 있을까 싶다. 팀 동료들에게도 감사하고, 만장일치 MVP로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 김연경이 남긴 화려한 발자취

김연경은 2005-2006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해 마지막까지 흥국생명 선수로 뛰었다. 처음과 마지막을 흥국생명과 함께 한 셈이다. 2005년 혜성 같이 등장했다. 당시 KT&G(현 정관장)전에서 4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여전히 국내 선수 중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에는 해외 진출을 결정했다. 일본, 튀르키예, 중국 리그에서 맹활약했다. 일본 JT마블러스, 튀르키예 페네르바체 등을 거치면서 숱한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튀르키예에 진출한 첫 시즌인 2011-2012시즌에는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과 MVP까지 차지했다. 그렇게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태극마크를 단 김연경도 화려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례적으로 우승팀이 아닌 4위 팀에서 MVP가 나왔다. 김연경이 MVP로 선정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에도 김연경은 2016 리우올림픽을 거쳐 2020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에 올랐다. 도쿄에서도 한국 여자배구가 4강 기적을 선사했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한국 여자배구 인기가 치솟았다. 도쿄올림픽 멤버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늘었고,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배구에 입문하는 팬도 덩달아 증가했다. 

국내로 다시 돌아온 그는 V-리그 코트에 등장해 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2024-2025시즌 도중 현역 은퇴를 발표한 뒤 ‘라스트 댄스’를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이기도 했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쏟아내며 마지막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동료들의 헹가레를 받는 김연경(위). /KOVO

◆ 김연경은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가 됐나

김연경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키가 작았다. ‘절친’ 김수지와 함께 배구 선수로서 꿈을 키워나갔지만, 키가 큰 김수지와 달리 김연경은 신체적 한계로 인해 웜업존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작은 키로 인해 세터로 뛰기도 했고, 수비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고교 시절 갑자기 키가 크기 시작하면서 192cm가 됐다. 큰 키에도 수비까지 능한 완성형 선수가 됐다. 

V-리그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파워를 발휘했다. 신인 김연경은 2005-2006시즌에 신인선수상은 물론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석권했다. 2006-2007시즌에도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MVP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대기록을 남긴 그야말로 ‘살아있는 레전드’로 우뚝 섰. 

해외에서도 위기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먼저 자신을 증명했다. 이후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와 뛰어난 사교성으로 그 팀에 녹아들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2011년 3월, JT마블러스 소속 당시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참혹한 재난이 발생했다. 조용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를 한 것으로도 알려져 큰 박수를 받았다. 

리더십도 빛났다. 국내 지도자들도 “요즘 선수들에게는 없는 근성이 있는 선수다”며 칭찬했다. 김연경은 대표팀에서도, 클럽팀에서도 리더의 품격을 보였다. 실제로 도쿄올림픽 당시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라는 말로 화제를 모았다. 선수들도 “아우라가 다르다. 또 저연차 선수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고, 챙겨주려고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경이 대부분의 선수들의 ‘롤 모델’인 이유다.

포효하는 김연경(10번). /KOVO

◆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다.”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끝난 뒤 정관장 고희진 감독은 “(김연경은) 한국 배구의 아이콘이다. 한국 배구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힘을 준 선수다.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김연경과 함께 페네르바체 시절에 이어 흥국생명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아본단자 감독. 그 역시 “한국 역사상 대단한 선수임을 확인했다”며 칭찬을 남겼다. 

이 외에도 해외에서도 김연경을 향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 다츠가와 미노루 감독은 “김연경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다”라고 했고, 세계적 명장 중 한 명인 지오반니 귀데티 감독은 “타고난 신장에 배구 센스까지 갖췄다.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런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페네르바체 이적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조 호베르투 감독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다. 가장 뛰어난 올라운드 선수이지만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모두와 잘 어울리고 모두 김연경을 좋아한다”고 평을 내렸다. 

이제 김연경은 제2의 인생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그의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서브를 준비하는 김연경.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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