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레스호’의 세 번째 시즌,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행 이룰까

이석희 기자

seri1966@thevolleyball.kr | 2026-06-17 21:55:20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사령탑인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7일 진천선수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진천선수촌=송일섭 기자

[더발리볼 = 이석희 기자]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2026년 여정이 시작됐다. 라미레스 감독의 세 번째 시즌이기도 하다. 여자배구처럼 국제무대에 나설 기회는 적었지만, 오히려 세계 랭킹을 끌어 올리게 된 남자배구 대표팀. 올해는 아시아 정상 정복을 노린다.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2026년 일정도 녹록지 않다. 6월 아시아배구연맹(AVC)컵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브라질과 평가전, 동아시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아경기대회까지 5개 대회를 치러야 한다. 

당초 예정됐던 코리아인비테이셔널은 남자배구, 여자배구 평가전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대한배구협회는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세계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줄어들자 직접 코리아인비테이셔널을 열었다. 당시 협회는 “국제 경기 경험 축적을 통한 대표팀 전력 강화 및 국내 배구 활성화를 위해 코리아컵을 개최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24년부터 남자, 여자 대회를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2024년에는 제천에서 남자대회를, 2025년에는 진주에서 여자대회를 열었다. 올해는 다시 제천에서 남자대회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남자배구는 라미레스 감독의 고국이기도 한 ‘배구 강호’ 브라질과 평가전을 치르고, 여자배구는 인도네시아와 맞붙는다. 2년 전에도 그랬듯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 중인 제천산업고 출신 임동혁과 정한용(대한항공), 임성진(국군체육부대)의 등장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한국 남자배구는 작년에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서 2010년 이후 15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랭킹 포인트가 부여되는 대회로 바뀌면서 한국 대표팀이 직접 참가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세터 황택의(KB손해보험)가 빠졌으나 세터 한태준(우리카드)과 아포짓 임동혁, 아웃사이드 히터 허수봉(현대캐피탈)과 김지한(우리카드), 미들블로커 차영석(KB손해보험)과 박창성(OK저축은행), 리베로 박경민(현대캐피탈)을 중심으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2008년, 2010년에 이어 2025년 세 번째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올해 몽골에서도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무엇보다 올해는 아시아선수권 관심도가 더 올랐다. 아시아선수권 우승팀에는 2028 LA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9월에 아시아선수권에 이어 아시아경기대회까지 모두 일본에서 열린다. 

라미레스 감독은 “올해 많은 대회가 있다. 좋은 성과를 내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좋을 것 같다. 당연히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도 일본, 이란 대표팀 레벨에 어느 정도 근접한 상태다. 작년보다 올해는 좀 더 선수들 컨디션을 잘 유지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자 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6월 17일 기준,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세계랭킹 5위(랭킹 포인트 317.17점)로 가장 높은 순위에 서 있다. 이어 이란과 카타르가 각각 17위, 22위에 랭크됐고, 한국이 27위다. 2년마다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일본과 이란이 2009년부터 우승컵을 나눠가졌다. 한국은 그동안 아시아선수권에서 1989년, 1993년, 2001년, 2003년 우승 이후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일본과 이란을 넘어야 한국의 LA행도 가능하다. 특히 한국 남자배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올림픽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28년 만의 올림픽 진출을 꿈꾼다. 

2025년 8월 23일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 우승컵을 들어 올린 라미레스호가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아시아배구연맹 제공 

성인 대표팀 명단에 오른 ‘젊은 피’

2026년 1차로 소집된 대표팀 명단에 눈에 띄는 이름들이 있다. 현대캐피탈 소속 선수들이 2026 아시아배구연맹(AVC) 챔피언스리그 대회 출전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명단에 다소 변화가 찾아왔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5월 대회를 마친 뒤 6월에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소집 명단에는 세터 황택의와 김관우(대한항공), 리베로 장지원(KB손해보험)과 김영준(우리카드), 미들블로커 이상현(우리카드)과 차영석, 박창성, 최준혁(대한항공),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과 임재영(대한항공), 임성진, 이우진(삼성화재), 아포짓 차지환(OK저축은행) 등이 이름을 올렸다. 늘 황택의와 함께 이름을 올렸던 한태준은 2025-2026시즌 직후 발목 주변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현재 재활 중이다. 김관우가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인 박경민의 공백 속에서 2000년생 김영준과 2001년생 장지원이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고, 직전 시즌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을 오가며 활약한 201cm 차지환도 함께 한다. 

이 가운데 2004년생 최준혁과 2005년생 이우진, 2006년생 김관우 등 연령별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도 ‘라미레스호’에 합류해 눈길을 끈다. 라미레스 감독은 2024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될 당시에도 최준혁, 이우진을 점검한 바 있다. 김관우는 2024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대한항공 지명을 받았지만, 아직 프로 무대에서는 교체 자원으로 뛰고 있다. 그럼에도 196cm 장신 세터의 등장에 기대감이 크다.  

라미레스 감독 역시 바레인, 파키스탄 대표팀을 이끌며 선수들을 성장시키며 ‘원 팀’을 만들기도 했다.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루겠다는 심산이다.  

대표팀은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 AVC컵 대회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라미레스 감독도 “소집 기간을 두 파트로 나눴다. 먼저 6월 말까지 1차 소집부터 AVC컵 대회까지 치른다. 임동혁, 정지석 선수도 6월 말까지 합류가 불가하고, 현대캐피탈 선수들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계획을 전했다. 이어 “대표팀에서도 한국 배구 발전을 이끌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육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젊은 선수들이 와서 ‘내가 왜 대표팀에 왔는지’ 증명해 나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올해로 모두 끝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좋은 에너지를 갖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5월 4일에 소집된 대표팀은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마친 뒤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중국 닝보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이후 AVC컵 최종 명단도 발표됐다. 세터 황택의와 김관우, 아웃사이드 히터 임성진과 정한용, 임재영에 이어 윤서진(KB손해보험)이 새롭게 발탁됐다. 아포짓 포지션에서도 차지환이 아닌 신호진(현대캐피탈)과 김요한(삼성화재)이 이름을 올렸다. 미들블로커 명단 변동은 없다. 리베로에는 장지원이 빠지고 박경민(현대캐피탈)이 합류했다.  

2026년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중국 닝보에서 한-중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합동훈련을 치른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대한배구협회 제공 대한배구협회가 발표한 2026 아시아배구연맹(AVC)컵 남자 대회 대표팀 명단./대한배구협회 제공

열정 넘치는 라미레스 감독
“이 선수들과 메달 획득하고 싶다”

라미레스 감독이 2024년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되기 전 화제가 된 장면이 있었다. 그는 파키스탄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2023년 9월에 열린 항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 나섰고, 12강전에서 한국과 격돌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한국을 3-0으로 꺾고 포효했다. 1999년생의 190cm 아웃사이드 히터 우스만 파르야드 알리와 대한항공 소속으로 뛰었던 아포짓 무라드 칸이 쌍포로 활약하며 한국을 울렸다. 한국에서는 충격적인 패배를 떠안았고, 라미레스 감독은 한국전 승리 직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다. 브라질 매체 ‘오템포’에서도 “라미레스 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아시아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라미레스 감독은 2024년 한국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선수들도 알겠지만 난 생각보다 감성적인 사람이다. 선수들에게 대한민국 대표팀으로서 함께 메달을 따고 싶은 게 목표라고 말했다”며 “또다시 그때처럼 비슷한 사진을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선수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올해도 라미레스 감독의 목표는 동일하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사실 2022년인가 우연히 한국과 일본의 AVC컵 경기를 봤는데, 그때부터 한국 대표팀을 맡아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마침 기회가 돼서 이곳으로 왔다. 개인적인 목표라고 하면 이 선수들을 이끌면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고 싶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올해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뜻깊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계속해서 라미레스 감독은 “늘 감독이 잘해서 메달을 가져오자가 아니라 선수들이 코트 안에서 의지를 보여주고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전 그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배구가 옛날에는 잘하지 않았나. 그때만큼의 인기와 영광을 누볐으면 좋겠다”며 진심을 전했다. 

1983년생의 브라질 출신 라미레스 감독은 2006년부터 브라질의 미나스 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시작해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9-2010시즌부터 5시즌 동안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았고, 2016년에는 브라질 우베를란디아의 감독으로 한 시즌을 보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브라질 U21 남자배구 대표팀의 코치로 경험을 쌓았고, 2018년에는 브라질을 떠나 아랍에미리트의 알 아인 팀의 코치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러던 2021년 바레인 대표팀 감독으로 2년 동안 지내면서 팀 성장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바레인은 2022년 AVC컵 동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이어 2023년 파키스탄을 거쳐 2024년 한국 대표팀 수장이 됐다. 

이제 한국 대표팀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라미레스 감독이다. 작년에는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11년 만에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이후 라미레스 감독은 지난 겨울 동안 대한배구협회의 지원 하에 한국 V-리그는 물론 일본, 이탈리아 리그를 직접 보고 현지에서 여러 사령탑들과 소통하며 새 시즌을 준비했다. 국제 배구 트렌드를 확인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왔다. 침체기에 놓여있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을 이끌면서 2026년에는 그의 바람대로 달콤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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