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의 조용한 영웅, 3년의 공백을 딛고 돌아오다 “아이에게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희수 기자

volonta@thevolleyball.kr | 2025-07-03 08:00:03

인터뷰에 응한 박주형./단양=김희수 기자

[더발리볼 = 단양 김희수 기자] 박주형이 마침내 코트로 돌아왔다.

박주형은 그야말로 2010년대 중후반 현대캐피탈의 조용한 영웅이었다. 2011-2012시즌부터 현대캐피탈에서 활약한 그는 수비형 아웃사이드 히터라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팀의 2016-2017시즌과 2018-2019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문성민이라는 최고의 스타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에 돋보이지는 못했지만, 박주형 특유의 빠른 공격과 까다로운 서브, 센스 있는 플레이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그랬던 박주형은 2021-2022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공식적인 은퇴식이나 행사는 없었지만 사실상 은퇴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박주형과 배구 팬들은 헤어졌지만 놀랍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공식전(2022년 1월 28일 우리카드전) 이후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박주형이 코트로 돌아왔다. 

임의해지 상태였던 박주형은 6월 19일자로 다시 선수로 등록됐고, 2일 충북 단양군 단양국민체육센터에서 치러진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의 2025 한국실업배구연맹 & 프로배구 퓨처스 챔프전 단양대회 남자부 예선전을 통해 다시 팬들의 앞에 섰다. 그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5점‧리시브 효율 54.55%를 기록했다. 팀 역시 우리카드를 3-0(25-23, 25-19, 25-19)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서브를 구사하는 박주형./KOVO

박주형은 경기가 끝난 뒤 몸을 풀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수들이랑 함께 열심히 연습했다. 그 노력들이 이번 경기에서의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하며 밝게 웃었다.

이후 박주형과 은퇴 및 복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그는 복귀를 선택한 계기를 밝혔다. “처음 코트를 떠날 때는 후회가 없었다”고 운을 뗀 박주형은 “그런데 작년에 아이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아이에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던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후회됐다. 그러던 찰나에 현대캐피탈에서 복귀 제안을 해주셨고, 흔쾌히 받아들였다”며 아이의 탄생이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전했다.

박주형 본인의 의지도 물론 강했고, 가족들과 주변인들 역시 박주형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는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거였지만, 모두가 내 의사를 존중해줬다. 개인적으로도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내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나였다”고 복귀 과정을 돌아봤다.

박주형은 운동을 쉬는 기간 동안 일반 회사원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운동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웨이트 위주로 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당연하게도 아직까지는 공백기의 여파가 느껴지는 상황이다. 박주형은 “공백기를 정말 실감한다. 오늘(2일)도 뛰면서 계속 힘들었다. 한 경기를 풀로 소화해본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많이 힘들다. 다행히 교체를 자주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버거움을 인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박주형은 예전 같은 욕심이나 야망을 품지는 않는다. 대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코트에 나선다. 그는 “옛날처럼 모든 경기를 다 뛰면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욕심 같은 건 이제 없다. 대신 수비 위주로 나에게 주어질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게 엔트리에 꾸준히 들면서, 아이에게 내가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전부”라며 겸허하게 목표를 밝혔다.

환호하는 박주형./KOVO

박주형은 1987년생의 노장이다. 또래 친구들 중 과거의 박주형이 그랬던 것처럼 배구를 내려놓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 박주형에게 “지금의 박주형처럼 코트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박주형은 “나도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태에서 복귀를 한 게 아니다.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했는데, 돌아보면 결국 그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혹시나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한 번 부딪혀보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조언을 전했다.

끝으로 박주형은 돌아온 자신을 반겨줄 천안의 팬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남겼다. 그는 “제가 팀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유관순체육관에 응원을 하러 많이 갔었다. 그럴 때마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짜릿했다. 오히려 밖에서 들으니 더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제가 코트로 돌아오게 됐다. 다시 한 번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다면 꼭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드리겠다”고 자신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팬들에게 전했다. 

천안에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던 조용한 영웅이 돌아온다. 천안의 팬들도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낼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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