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VNL 퇴출, 한국 여자 배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최병진 기자
cbj0929@thevolleyball.kr | 2025-07-30 07:30:52
[더발리볼 = 최병진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페르난도 모랄레스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2025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1승 11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올해 VNL에서 순위가 가장 낮은 팀은 내년 VNL 무대에 오를 수 없다. 모랄레스호는 VNL 잔류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 결국 강등을 마주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여자 배구의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쓸쓸한 결말과 함께 한국 여자 배구의 국제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게 됐다.
‘경우의 수’ 기원으로도 피할 수 없었던 최하위
모랄레스 감독은 생존을 위해 최소 2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1주차부터 쉽지 않은 흐름에 갇혔다. 한국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잇따라 세트 점수 0-3으로 패했다. 체코와 3차전에서는 접전 끝에 2-3으로 지면서 귀중한 승점 1을 따냈지만, 이어진 미국전에서도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모랄레스호는 2주차 첫 경기에서 캐나다를 3-2로 꺾으며 대회 첫 승을 거뒀다. 이후 벨기에와 튀르키예에 각각 1-3, 0-3으로 졌고,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에서는 풀세트 승부에서 패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을 잡기 위해 튀르키예전에 과감한 로테이션을 돌렸으나 실패했다.
잔류를 위해서는 최소 1승 이상이 필요했으나 3주차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폴란드, 일본, 불가리아 그리고 프랑스와 4경기에서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4개 팀 중에서도 불가리아와 프랑스에 초점을 맞췄지만 불가리아전 승점 1 획득에 그쳤다. 1승 11패를 기록한 대표팀은 승점 5로 17위에 위치했다. 잔류를 위해서는 경우의 수가 필요했다.
VNL에서는 승수, 승점, 세트 득실률, 점수 득실률 순으로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한국이 이미 모든 경기를 끝낸 가운데 태국이 승점 5로 같지만 세트 득실률에서 밀리면서 최하위였다. 한국이 세트 득실률 0.314로 태국(0.29)에 앞서며 한 단계 높은 순위에 섰다. 다만 태국은 캐나다와의 최종전을 남겨뒀다. 승점 1만 추가하면 한국을 넘어설 수 있었다. 즉, 한국이 잔류를 하기 위해서는 태국이 캐나다와 마지막 경기에서 0-3이나 1-3으로 패해야 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태국이 캐나다와 최종전에서 두 세트를 따내며 승점 1을 확보했고, 그렇게 모랄레스호의 강등이 확정됐다.
이번 강등은 단순히 다음 대회에 나설 수 없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여자 배구대표팀은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 이후 황금세대인 김연경(은퇴), 양효진(현대건설), 김희진(현대건설) 등이 국가대표 은퇴를 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1년 VNL에서 16개국 중 15위에 머물렀고, 2022년과 2023년에는 두 대회 연속 전패 수모 속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6년 만에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도 좌절됐다. 그리고 VNL 강등까지 직면하게 됐다. VNL 홈페이지에서도 “한국이 2018년 초대 대회에서 12위를 기록한 뒤 하락세를 겪고 있다”고 대표팀의 난관을 조명했다. 계속해서 우려됐던 국제 경쟁력 약화 문제가 강등으로 방점이 찍힌 셈이다. 더욱이 현재 VNL과 승강제 시스템으로 운영됐던 대회인 챌린저컵은 지난해를 끝으로 중단이 됐다. 2027년 VNL 복귀를 노려야 하는 가운데 내년부터는 강등된 팀의 빈자리를 직전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국가 중 FIVB 랭킹이 가장 높은 팀이 차지하게 된다. 한국은 FIVB 랭킹에서도 37위로 추락했다. 18개 팀이 참가하는 VNL 복귀를 위해서는 세계랭킹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걸린 아시아 대회에서 최대한 승수를 쌓아야 한다.
거포 부재와 불분명한 시스템
한국은 VNL에서 거포의 부재를 절실히 느꼈다. 김연경 이후 반드시 점수를 따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터트려 줄 해결사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강소휘가 이번 대회에서 팀 내가장 많은 151점을 올렸다. 육서영과 이선우가 각각 111점, 94점을 기록했지만 대회 전체 공격 순위는 높지 않았다. 강소휘가 17위에 머물렀고, 육서영이 33위, 이선우가 44위였다. 이러한 약점은 상대 공격을 수비로 막아낸 뒤 반격을 하는 과정이나 랠리가 이어지는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집중력 있는 디그로 볼을 살려내도 다시 공격에 나설 때 상대 블로킹에 막히거나 범실이 나오면서 득점에 실패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그 결과 한국은 단 한 경기도 블로킹에서 상대보다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블로킹에서 같은 수치를 기록했던 벨기에와 일본과 대결을 제외하면 모두 열세를 보였다.
물론 블로킹을 많이 기록한다고 반드시 승리를 하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블로킹을 허용하더라도 다른 공격이나 서브 득점으로 우위를 점하면 경기를 따낼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은 득점 찬스를 번번이 놓치며 점수 차이가 벌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다른 국가보다 평균 신장이 낮은 아시아 국가의 신체적인 한계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180점으로 득점 7위를 기록한 일본 국가대표팀의 와다 유키코의 신장은 174cm에 불과하다. 177점을 기록한 요시노 사토도 178cm로 큰 키가 아니다. 태국 국가대표팀의 주공격수인 핌피차야 꼬끄람은 180cm로 강소휘, 육서영과 동일한 높이를 갖고 있다. 즉, 한국보다 좋은 성과를 낸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월등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경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선수 개개인의 실력과 플레이 스타일을 차치하고 한국은 아직까지 다른 국가의 블로킹을 넘어설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확실한 해결사를 찾지 못했다는 건 여자 대표팀만의 색깔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의미로 파생된다. 한국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보여준 베테랑들이 물러난 후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현재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선수들을 주축으로 신예 선수들의 합류가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세대교체라는 목표 속에서 대표팀이 어떤 배구 스타일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과 준비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모랄레스 감독은 높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스피드 배구를 강조하고 있다. 이전 사령탑인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세터가 낮고 속도감 있는 토스를 연결하고, 공격수는 상대 블로킹이 자리를 잡기 전에 빠르게 공을 때리는 상황을 연출하길 바라고 있다. 물론 상대 수비를 흔들 만큼의 조직적이고 빠른 배구가 단기간에 이뤄지는 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신장이 좋은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도 높이의 강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속도를 올렸고, 일본이나 태국도 어느덧 빠른 플레이가 익숙해진 팀이 됐다. 그만큼 한국과 다른 국가들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더욱이 토스와 공격만 빠르게 한다고 스피드 배구가 완성되는 게 아니다. 서브 리시브부터 수비 커버와 연결 등 상황에 따른 대처도 조직적으로 이뤄져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터와 공격수 외에 다른 선수들도 배구 시스템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플레이를 해야 한다. 때문에 스피드 배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지향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여자 대표팀과 여전히 거리가 있는 실상이다.
더욱이 한국의 V-리그는 높은 타점이나 강력한 힘을 보유한 외국인 선수들이 주로 공격을 도맡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소속팀과 대표팀의 환경이 다르고, 소속팀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격 기회도 줄어든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표팀의 방향이 명확해야 하지만 반대의 모습으로 선수 개인의 성장세도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됐다.
한국 배구 전체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VNL 강등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여자 배구의 암흑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우려 때문이다. 인구 감소 문제 속에서 배구 유망주 또한 줄어들고 있다. 대한배구협회는 올해부터 배구 승강제 리그를 도입했다.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다. 만 6세에서 21세에 해당하는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들면서 학교의 배구부 운영이 한계점에 다다랐다. 고등학교에서는 선수 구성이 힘든 팀도 존재한다. 당연히 유소년 단계에서도 재능 있는 선수를 발견하기 어렵게 됐고, 국제 경쟁력 하락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배구협회를 중심으로 각 단체와 배구계 관계자들이 작금의 사태에 경각심을 갖고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인구가 줄어든다면, 비교적 적은 선수들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꾸준한 시도 또한 필요하다. 위기를 절실하게 느낀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면 한국 배구의 추락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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