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부담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실, 이윤정은 기적의 우승 세터이자 1위 팀의 세터다
광주=김희수 기자
volonta@thevolleyball.kr | 2026-01-18 08:23:22
[더발리볼 = 광주 김희수 기자]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고,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도 있다. 그래도 전진한다.
이윤정은 한국도로공사의 구단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세터다. 2021-2022시즌에는 실업을 거쳐 프로에 입성해 ‘중고 신인’으로 신인상(현 영플레이어상)을 차지했고, 2022-2023시즌 한국도로공사가 흥국생명을 상대로 ‘0%의 기적’이라 불리는 리버스 스윕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팀을 이끈 우승 세터가 됐다.
그리고 진에어 2025~2026 V-리그에서도 이윤정은 팀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야전사령관으로 활약 중이다. 다만 경기력이 매 경기 꾸준히 뛰어나지는 않다. 앞선 시즌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약간의 기복도 있고 답답한 플레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녀부를 통틀어 가장 시즌 내내 큰 부침 없이 전진하고 있는 팀을 이끄는 세터임은 분명하다.
17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한국도로공사와 페퍼저축은행의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선 이윤정은 48.7%의 세트 성공률을 기록하며 세 명의 두 자릿수 득점자를 만들어냈다. 서브 득점도 세 개를 터뜨리며 상대 리시브를 흔들기도 했다. 이윤정의 지휘 속에 한국도로공사는 페퍼저축은행을 3-1(23-25, 25-19, 25-19, 26-24)로 꺾고 승점 50점 도달까지 1점만을 남겨두게 됐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이윤정은 “흥국생명전 패배 이후 선수들 모두가 이 경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서 너무 기쁘다”는 승리 소감을 먼저 전했다.
이후 이윤정과 이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 패배한 흥국생명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눠봤다. 흥국생명전에서 한국도로공사의 팀 리시브 효율은 41.94%로 높았다. 그러나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등록명 모마)의 공격 점유율은 48.98%까지 치솟았다. 일반적으로 리시브 효율이 높을수록 고른 공격 옵션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이날 이윤정의 플레이는 다소 단조로운 면이 있었다.
어떤 세터도 리시브가 좋은데 단조로운 플레이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이윤정 역시 나름의 혼란스러움에 시달린 상황이었다. 이윤정은 “감독님께서 속공을 한 두 개 섞어주면서, 아닐리스 피치(등록명 피치)가 속공을 보다가 모마한테 가면 그때 왼쪽으로 공격을 돌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코트 밖으로 잠깐 나와 있을 때 코치님들께서 모마 쪽 점유율을 좀 더 가져가도 될 것 같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혹시 지금 모마 점유율이 너무 적은가?’ 싶어서 들어가서 점유율을 올렸는데 경기가 끝나고 보니 계산보다 모마 점유율이 너무 높게 나온 상황이었다”고 모마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진 이유를 밝혔다.
물론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다고는 하나, 점유율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리고 경기 결과도 패배였던 것에 대해 이윤정 본인은 누구보다 큰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윤정은 “연패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스스로 생각해 봤을 때 속공 점유율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신경 쓰되, 다른 날개 공격수들까지 잘 살려보자고 생각했다”고 이 경기를 준비한 과정을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다가 오히려 경기 안에서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고 자책한 이윤정이었다.
실제로 경기 후 김종민 감독은 “(이)윤정이가 자신감을 좀 잃은 것 같다. 1위 팀의 세터인데, 여전히 뭔가에 쫓기는 듯한 플레이를 한다”며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윤정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그는 “우리 팀이 리시브가 너무 좋다. 세터로서는 정말 감사한 환경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환경이 되니까 모든 선수들을 다 잘 살리고 싶은 욕심이 너무 커졌다. 분배라는 건 결국 내 손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거라서, 역으로 좀 생각이 많아지거나 주춤하는 순간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 플레이 말고 다른 걸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남는다”며 자신감이 떨어진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행히 떨어진 체력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곧 다가온다. 한 경기만 더 치르면 4라운드가 끝나고, 올스타 브레이크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윤정은 휴식보다는 항상성의 유지를 선택하고자 한다. 그는 “회복도 중요하겠지만, 팀원들과의 대화와 노력을 통해 더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더 많은 영상을 보고,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브레이크 기간 동안 쉬면서도 배구 생각은 놓지 않고 싶다. 그래야 더 많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며 브레이크 기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밝혔다.
이윤정은 원정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광주 원정까지 와서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정말 큰 힘이 된다. 팬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과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경기를 하겠다”며 밝게 웃었다.
더 잘하고 싶은 부담감과, 동료들의 활약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책임감은 오늘도 이윤정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의 짐도 이윤정이 기적의 우승을 일군 세터이자 팀의 1위 수성을 이끌고 있는 세터라는 사실을 지우지는 못한다. 그 자부심을 무기로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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